작업 여섯 시간째에 A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집앞 구석진 곳에서 공들여 담배를 태웠다. 엄마와 어린 딸이 지나갔다. 엄마는 인스턴트 컵우동을, 딸은 초코 하드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었다. 실랑이 중이었다. 이거 먼저 먹을꺼야. 안 돼, 국수 먼저 먹어. 싫어, 이게 더 맛있단 말야.

   불이 다하자 문득, 짭짤한 것이 간절했다. 지갑을 두고 나왔지만 집앞 마트에는 마일리지가 쌓여 있었다. A는 컵우동 하나를 가져와 등록번호를 불렀다. 신분증이 있어야 하는데. 확인해야 해서. 카운터의 아주머니가 미소 비슷한 것을 지었다. A는 머리를 긁적이다 물건을 진열대에 다시 두고 집으로 들어왔다. 해는 낮지만 아직은 밝은, 건조하고 쌀쌀한 봄 저녁이었다. 아주머니는 A의 얼굴과 번호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무엇이 이야기를 만들까.


   아무래도 짭짤한 게 간절했다. A는 지갑을 들고 다시 마트로 갔다. 아쉬워서 저녁 삼을 우삼겹도 집어들었다. 카운터의 아주머니가 웃었다. 우리가 난처해서 그래. 가족끼리도 일이 엇갈려서 우리한테 뭐라 그런다니까. A는 뭐 그렇죠, 하고 웃었다.

   그리고 어려 보이는 남자애 둘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A보다 두 층 아래에서 문이 열렸다. 그애들은 휴대폰 액정에 열중하다 제때 내리지 못했다. 문이 닫히다 말고 다시 열렸고, 다시 닫혔다. A는 이 모든 것을 생각하다가 집 비밀번호를 한 번 틀렸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다시금 생각한다. 도대체 무엇일까.


   문득, 이라는 방식으로, 혹은 드디어, 마침내, 라는 방식으로, 우리의 삶은 이야기가 되곤 한다. 무엇이 이 모든 것들을 이야기로 만드는가. 그 순간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다지 상관없어 보이는 말과 일들은 세계의 어느 구석에서 이어지는가. 그리고 그 찰나의 틈새를 들여다보는 것은, 생각하는 것은, 어떤 일인가.


   별것 아닌 것들이 이야기가 되는 그때, 세계는 조금 달라진다. 그리고 최소 하나는 분명해진다. 나는 절대 자살하는 종류의 인간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A는 면이 담긴 스티로폼에 끓는 물을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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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습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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