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 ~ 3.26. 이정우, 「탐독」




    1.

    한 언어가 가장 섬세하고 풍부하게 사용되는 장소는 문학이다. 그래서 어떤 외국어를 공부할 때 그 외국어로 씌어진 문학작품들을 읽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그럴 때에만 그 언어의 심층에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다.


    2. 시론

    세계와 인간의 관계맺음에서 감각적인 것과 가지적인 것의 관련성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신체적 실존과 이성적 사유 사이의 관련성이기도 하다. … 시는 … 자연히 사물의 시간적 유동성, 질적인 총체성, 조작 이전의 사물성의 추구를 함축한다. … 부분과 전체의 투명한 그림이 그려졌을 때 합리적 사유가 형성된다. 그러나 시적 명징성은 … 사물들을 분절하는 새로운 방식을 창조하는 행위이다. 은유는 하나의 예이다. 은유는 일반적으로 형성된 존재론적 분절을 가로지르면서 새로운 존재들을 창조해낸다. 즉 시는 동일성과 차이의 격자를 무너뜨린다. 이렇게 형성된 시어들은 합리적 사유에서와는 다른 방식의 정확성을 형성한다. … 시는 시적으로 정확해야 하는 것이다. … 시가 드러내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진실이다. 시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던 진리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과학의 역할이다. 대신 시는 우리에게 이미 드러나 있으나 우리의 둔한 지각이나 때묻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드러낸다.


    3. 카뮈, 「이방인」

    의미가 완전히 발가벗겨진 세계, 그 세계에서 인간은 완벽한 무의미 앞에 서게 된다. 그 세계에서 인간은 이방인이다. 「이방인」은 이런 세계 앞에 우리를 세운다. 그러나 그 세계는 무의 세계가 아니라 '주어진 것'과의 원초적 만남이 이루어지는 세계이다. 그 세계 위에 두려운 의미의 두께가 쌓인다. 「이방인」은 그 두께를 덜어냈을 때 드러나는 무구한 세계로 우리를 데려간다. 거기에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자신의 의미, 세계의 의미, 삶의 의미를 다시 써야 하는 것이다. 「이방인」은 존재론적 의식의 통과의례이다.

    (원관념에의 도달?)


    4.

    맑시즘 경제학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되 주류 경제학의 과학적 성과들도 부지런히 흡수할 때 과학적인 동시에 윤리적인 정치경제학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5.

    철학적 사유는 오직 텍스트, 오로지 텍스트와 더불어 논의할 때에만 정식으로 철학적 사유라 할 수 있다. … 철학은 오로지 원전 텍스트, 그것도 원어 텍스트를 가지고서 이야기할 때에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철학이다. … 오직 어려운 텍스트들을 붙들고 읽고 읽고 또 읽으면서 사유를 단련시킬 때에만 그 내용이 자기 것이 되는 것이다.


    6. 포스트모더니즘, 탈근대에 대한 '흥미로운'  코멘트.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모호한 사조가 (솔직히 지금도 나는 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르겠다.) 지식 세계를 뒤덮었고 이 와중에 프랑스 철학자들도 휩쓸려 들어가 우스꽝스럽게 패러디되었다. '유목', '해체' 같은 말들이 그 본래의 철학적, 정치적 맥락에서 탈각되어 어이없게도 저질 딴따라 문화들을 서술하는 용어들로 둔갑했다. … 내게 이렇게 '포스트모던'이라는 말은 문화적 모순으로서 인식되었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 말은 이중의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부정적 뉘앙스에서는 후기자본주의 사회 (특히 신자유주의적 상황) … 시대가 '포스트모던' 시대이다. 그러나 이말을 '탈근대'라는 말로 번역할 때에는 긍정적 뉘앙스를 띠며, 오히려 초超근대에 이르러 극에 달한 근대성을 비판하고 삶의 새로운 철학을 찾아내려는 운동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 '포스트모던'은 서술적 용어로서 초근대라는 뜻으로 쓰고, '탈근대'라는 말은 근대성이 배태한 모순들을 극복하려는 사유 운동의 뜻으로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본다면 1990년대 한국 사회의 현실은 '포스트모던'적이고, 근대성 및 그 극단화인 '포스트모던'에 대한 극복의 노력은 '탈근대'적이라 할 수 있다.


    7.

    텍스트를 치밀하게 독해하지 못했기에, 한 문장 한 문장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 전체가 '흐리멍덩'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흐리멍덩'한 것은 그 텍스트가 아니라 바로 그런 인간들 자신이다.


Posted by 습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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