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지진계 2016. 6. 12. 17:11



1.


   군생활이 너무 스트레스여서, 판타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는 사실 핑계고, 이전부터 한 편은 정말 제대로 쓰고 싶었다. 판타지보다 순문학을 쓰는 게 더 즐겁지만, 판타지로밖에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가끔은 내가 지은 세계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게 큰 위안이 된다.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균형을 잃으면 문제겠지.


2.

   김연수가 <밤은 노래한다>에서 이런 비슷한 얘기를 했다. 딱 하나만 간절히 바라면, 세상은 그걸 이루어 준다. 세상은 그렇게 돼 있다. 너무 매혹적인 이야기.

   내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다. 내가 판타지 소설을 싫어하는 건 아무런 의미 없이 재미만을 위해 쓰여진 (해당 작가들은 반발할지도 모르겠지만) 웹소설 류에 한해서다.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는 나도 좋아한다. 문제는 판타지가 아니라 망상을 써내려간 소설들이다.

   '마법'이라는 소재가 그렇다. 왜 마법사는 항상 주문을 외는가? 주문 그거 오글거리지도 않나? 시전 시간을 누가 기다려 주지? 서클은 또 뭐고? 차라리 레벨 업이라고 하지. 식상하고 의미 없다.

   딱 하나만 간절히 바라면, 세상은 그걸 이루어 준다. 어릴 때부터 내가 상상했던 마법은 이런 거였다. 멋진 (오글거리는) 주문이나 시전 동작, 마법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열망만으로 이루어지는 일들. 마법사는 매 순간 매사를 누구보다 강하게 열망할 수 있는 존재겠지.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멋진 일이다.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때가, 또 그런 사람이 태반인데. 그런 마법사들이라면, 싸움도 정말 처절하게 하겠지. 더 이기고 싶은 사람이 이기게 돼 있는 싸움.


3.

   좋은 판타지는 스스로 판타지에 대한 반성을 포함하고 있다. 라는 말을 어디서 주워들은 적이 있다. 여기서 '반성'이라 함은, 내 생각에는 현실을 향한 선명한 화살표다. 그거면 되지. 해리 포터에는 사랑과 용기가 있었고, 반지의 제왕에는 투지와 낭만이 있었으며 나니아 연대기에는 순수와 정의가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은 이거다.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참 보잘것없는데, 세상은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든 굴러간다. 그 추진력은 어디에 있냐는 거다. 찾아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고민했다. 그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답은 '욕망'이다. 세상은 제각기 다른 것을 멋대로 열망하는 존재들의 벡터 합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니까, 어떤 욕망인가. 사람의 욕망이, 사람의 힘이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는 걸까.

   결국 이건 내 나름대로는,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는가, 라는 질문과도 같다. 세상이 욕망의 벡터합이라면 그 성분들의 분석이 곧, 앞으로 세상이 나아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될 수 있겠지.


4.

   옴니버스 + 피카레스크 식의 구성을 생각하고 있다. 나는 전체가 아니라 파편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사람의 욕망은 적분될 수 없으니까. 무수히 많고 무질서한 벡터들의 화학반응. 그걸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일이다.


5.

   다 쓸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전역하기 전에 네 편은 쓰고 싶다. 다섯 달 남았다. 재밌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이야기들이 막 돋아나고 있다. 흥미본위 판타지들을 그렇게 욕했는데, 똑같은 결과물이 나오면 스스로 정말 실망할 것 같다.

   오글거리지만 않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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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습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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