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현, 「비평의 장소와 비평(가)의 임무: 사회인문학적 지평에서 '비평의 가능성'을 음미하기」, 『사회와 철학』제21집 (2011), p177~206






   2. 비평은 가능한가: 비평의 에세이화를 위한 변론


   IMF 외환위기가 사회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2000년대 전후로 국가가 파산을 할 수도 은행이 망할 수도 있으며,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삶의 기반이란 언제든지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것일 뿐이라는 사실, 우리가 상시적 위험사회를 살고 있음을 너나 없는 모두가 인식하게 되었다. 사회의 무드에서 일상 습속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는 한국전쟁 이후의 가장 심각한 변동기를 거쳤으며 그 변화의 여파는 점점 더 구체화/미세화되고 있다. (185p)

   각주 10) IMF 외환 위기가 한국사회 전반에 전면적인 변화를 야기했다고 할 때, 그것은 단지 구제금융 신청과 함께 전세계적 자본의 요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시절을 거치면서 '기준'에 대한 신뢰가 붕괴되었고, 흔들리던 거대 담론의 최종적 붕괴가 선언되었다. 국가, 경제, 법 등의 공적 담론이 고정된 것도 신뢰할만한 것도 불변하는 것도 아니라는 인식이 널리 유포되엇으며 삶에서 개인의 욕망 외에는 남는 것이 없게 되었다. 미래를 상상할 수 없으며 진보에 대한 믿음이 더 이상 존속하기 어려운 시절, 모더니티의 진보 이념을 부정하면서 니체가 선언한 바, 영원회귀의 시대 혹은 거대한 허무주의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3. 비평은 어떻게 가능한가: 비평의 장소와 비평(가)의 임무 (p193~)


  1) 타자의 눈으로 보기

   가라타니가 ... 강조하고자 한 비판은 ... '나의 시점'이 최대하 배제된 객관의 지평이라는 의미에서의 '타인의 시점' 도입이다. 가라타니는 칸트를 통해 "내성이 가진 공범성을 깨뜨리려고 한" 시도, 즉 "종래의 내성(거울)과는 다른 어떤 객관성(타자성)의 도입을 발견"(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 2005, p91~3)하고자 한 것이다.

   사실, 타자의 겹눈을 도입하는 것, 이는 비평의 '이차적' 성격 혹은 비평의 사회적 기능을 재확인하고 내화하는 행위이다. ... 그의 관점에 따르면 비평은 해석 공동체의 범위를 넘어서거나 재설정할 수 있는 '내부이자 바깥'의 자리에 놓인다.

   "어떤 자리의 외부인 동시에 내부인 장소, 즉 의심을 품은 채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어떤 영토의 경계는 때때로 가장 놀라운 창조적 사유가 샘솟는 장소이기도 하다."(Terry Eagleton, 『이론 이후』, 2010, p64)

   ... 이는 이데올로기적 지평과 무관하게 비평이 자기가 속해 있는 해석 공동체 혹은 언어 규칙으로부터 끊임없이 떠나고 헤매고 머물렀다 다시 돌아오는 이동성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비대칭적 차이로 만나는 언어 규칙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비평이 지향해야 할 바라면, 사실상 비평이 가능한 장소를 마련하는 일은 비평의 '이차적' 존재형식을 자기-인식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스스로 일차적이고 오리지널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때, 그 때 비로소 비평은 '비평적'일 수 있다. (가라타니 고진, 「정치, 혹은 비평으로서의 광고」, 『언어와 비극』, 2004, p318) 그리고 그것은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오성의 판단능력으로 해소되지 않는 초월의 장소를 위해 '상상력'의 도움을 요청할 때에 그러했듯이 ... 불가능의 층위를 만들어내려는 말 그대로 죽음을 각오한 도약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주의를 기울여 두어야 할 것은, 타자의 눈의 도입이 동일한 시공간의 지평 안에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직 오지 않은 타자, 올 수 없는 타자, 우리의 해석 공동체 너머에 있는 미래의 타자를 고려하는 것, 과거의 눈과 미래의 눈을 겹쳐 놓고 현재를 다시 보는 것, 비평이 타자의 눈을 도입한다는 것은 역사적 지평을 고려한 자리에서 경계 바깥을 상상하는 일이다. 그것은 '사람의 삶이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서도 자신 이외의 것,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유지되며, 삶의 과정이란 타자와의 끊임없는 교환의 과정'이라는 의미에서의 문학과 그것을 매개로 한 시대 현실(사회)의 초월적 차원을 복원하려는 시도,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시선의 가능성에 대한 탐색인 것이다.

   그렇기에 타자의 겹눈을 도입하는 것과 상대주의 혹은 무한 다원주의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타자의 겹눈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김우창이 가라타니를 거론하며 지적했듯이 장소를 옮겨가면서 비판을 하는 것 외에 비평의 장소적 독립성을 확보할 수 없는 현재적 상황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평의 가능성은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비평'으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간 자리에 있는 비평, 일상적 시야가 포착하지 못하는 지점을 보는 눈으로부터 마련되는 것임에 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타자의 눈을 도입하는 것은 비평의 전문성을 회복하는 일을 의미한다. 비평의 전문성은 이론적 무장을 통한 '자족적 글쓰기'가 아니라 비가시의 지점까지 통찰하는 시선의 획득을 통해 마련되는 것이다. (p194~197)


   2) 망명자의 질문법으로 묻기

   그러나 근대 이후의 지배적인 사유방식이 그러했듯이 어떤 낯선 것도 결국에는 우리의 사유틀에 동화된다. ... 하나의 해석 공동체에 굴절 없이 깊이 몰입하는 것은 비평의 위험천만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따라 ... 우리 시대의 비평가는 정신적 이동성을 지향하는 망명자의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Zygmunt Bauman, 『액체근대』, 2005, p328~334) (p197)

   일단 데리다 식의 절대적 환대 상태를 유지하는 일, 대가 없이 타인의 눈의 개입을 허락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Jacques Derrida, 『환대에 대하여』, 2004, p70~1), 동시에 타인의 눈으로 비평 자신의 심장을 겨누는 일, 궁극적으로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불안정하고 애매한 위치에 놓인 비평이 자신이 머무는 장소 혹은 지반의 정당성을 묻는 일, 이런 것이야말로 현재의 비평에 절실히 요청되는 망명자의 질문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p199)


   4. 비평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성적 보편성을 위한 비평의 테크놀로지 (p200~)


   타인의 시선을 도입하는 일과 그것을 통해 비가시의 지점까지 들여다보는 일 자체가 아카데미즘/저널리즘의 경계를 넘어서는 '비평'일 수 있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작품이라는 구체적 대상을 통과한 작업이라는 것, 냉철한 분석의 출발점이 감각/감정의 층위라는 것, 비평이 비전문적이거나 무차별적인 비판과 구별되는 특성이 여기에 있다.

   ... 망명자의 질문법이란 타인의 시선을 내 안에 품는 것뿐 아니라 타인과의 정서적 공감을 가능하게 하는 테크놀로지이다. (p200)

   ... 바로 그렇기에 타인의 눈을 도입하고 망명자의 질문법을 체화해야 하는 일 즉 구체적 대상(/사건)에 관한 감성적 사유로서의 비평 행위를 통해 '하나이자 여럿'일 수 있는 보편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업이야말로 삶과 삶에 대한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을 복원하기 위한 첫 번째 행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p202)



Posted by 습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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