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은 인용.


참고문헌 : 김홍중, 「마음의 사회학」 13장.


<하루키 소설의 지진계적 성격 … 사실 80년대를 지나 새롭게 도래한 90년대의 한국 사회는 그 자체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닮아 있었다. 그것은 일상이나 추억이나 무의미였다. 거기에는 식은 맥주가 있고, 농담이 있고, 농담 뒤에 찾아오는 침묵이 있고, 밤의 어두운 해변이나 무개차의 심심한 드라이브, 일렉기타의 건조한 연주, FM라디오의 anachronism, 애정은 없지만 예의바른 성교가 있었다. 기억하기 싫은 것들과 잊을 수 없는 것들, 상처를 숨긴 미소, 우울한 성숙, 그리고 단호한 냉소가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어떤 감각. 우리의 현존의 의미가 그다지 명료하지 않다는 것. 그 알 수 없음을 견디기 위해서 수많은 문화의 기호들을 탐식하고 가면들을 뒤집어쓰고 몰입 혹은 가벼움으로 무의미를 돌파해야 한다는 것. 이제 오직 변주만이 있을 것이며, 끝없이 반복될 것이며, 모든 것은 망각될 것이며, 사실마저 망각되었을 때 모든 것은 결국 처음 보는 얼굴을 하거나 아니면 지독한 기시감 속에서 다시 나타나리라는 것. 80년대가 불현듯 끝나고 나타난 세계는 진보의 시간이 아닌 영겁회귀의 시간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는 직감을 제공했다. 시작에서 끝에 이르는 진보로서의 역사 혹은 그러한 역사에 대한 믿음은 매우 비현실적이거나 촌스러운 것으로 돌변하였다.>


<하루키적 멜랑콜리의 뿌리가 거기에 있다. … 지각변동의 충격파를 자신의 몸과 마음에 하나의 조건으로 수용한 채 상실의 감각을 익히고, 낙관주의를 버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 태도, 니체 식으로 말하자면 영겁회귀의 운명에 대한 사랑을 우울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영겁회귀의 시간성에 오염된 90년대는 극도로 비루했지만, … 매 순간의 반짝이는 아름다움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포스트 이데올로기, 포스트 히스토리아, 포스트모던의 시대는 가벼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 가벼움에는 영원성의 치명적 무게가 부착되어 있었다. 우리는 가벼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달리 표현하면 상실을 상실할 수 없었다. … 불현듯 나타난 영겁회귀의 시간은 대지진 이후에 도래하는 끝없는 여진의 파동과 같은 나른하고 불안한 삶의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하루키는 그 무늬를 지진계의 바늘처럼 냉정하고 절실하게 재현한다. 하루키보다 더 절망적으로 '우리의 삶은 결정적 비극 이후의 삶'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작가는 흔치 않다. 그보다 더 무심하고 차갑게 종언 이후의 삶의 궤적을 그려준 작가도 드물다. … 지각변동을 가장 드라이한 그래프와 곡선만으로 묘사해준 문학적 지진계 … 말하자면 그는, 이제 더이상 선험적으로 주어진 의미의 지반을 딛고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론적 지진의 상태 속에 던져진 개인들이 고함을 지르거나 세상을 저주하거나 타자들을 증오하거나 자학이나 위악과 같은 포즈에 탐닉하거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최소한의 인간적 자세를 유지하면서 생존할 수 있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만 했던 삶의 기술들을 90년대의 인간들에게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그 기술에는 음악을 듣는 법, 요리를 하는 법, 농담을 하는 법, 테니스를 치는 법, 술을 마시는 법, 친구를 사귀고 이성을 유혹하는 법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은 파산된 교양의 시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교양소설이었으며, 서로 소통해야 하는 절대적 필요가 사라진 시대에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법, 환원하면 사회를 만드는 법에 대한 강의였다.>






「잠」을 읽고 :


1.

   남편의 얼굴, 악몽의 노인 등,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 의미불명, 존재불명의 것들에 대한 당혹감과 공포가 작품 전반에 깔려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적 상황(시대상), 니체적 시간선 위에서 개인이 직면하는 실존적 위기와 불안.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과 공포.


2.

   '나'가 잃고 싶지 않아 하는, 몸 속의 무엇. 거울을 보는 장면. 생명력, 능동적 에너지. 어떤' 작위'의 능력이 아닐까. 존재론적 지진은 사실 이 에너지를 빼앗아 가는 것. 니체적 시간선에 '삼켜져 버린' 상태에서는 능동적인 힘을 잃고 영겁회귀 속에서 수동적 삶을 살 수밖엔 없는 것.


3.

   <우리의 현존의 의미가 그다지 명료하지 않다는 것.> 소설 속 서술자가 니체적 시대 징후를 감지하는 대목.

   26p, <그것이 내 생활이다. 즉 잠을 못 자게 되기 전까지의 내 생활이다. 하루하루가 거의 똑같은 일의 되풀이였다. … (일기를) 이삼 일 깜빡 잊고 쓰지 않으면 어느 날이 어느 날인지 벌써 구별하지 못한다. 어제와 그제가 뒤바뀌어도 거기에는 아무 지장도 없다. … 나 자신이 찍은 발자취가 그것을 인정할 틈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바람에 날려가버린다는 사실에 … 그런 때, 나는 욕실 거울 앞에 서서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본다. … 그러면 내 얼굴은 점점 나 자신에게서 분리되어간다. 그리고 어쩌다가 우연히 한자리에 동시에 존재하는 별개의 것이 되어버린다. … 이 동시존재를 지금 그대로 유지해가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 내게 요구되는 일이다.>

   니힐리즘. 영겁회귀 속에서 직면하게 되는 실존적 위기, 허무감의 서술이 노골적으로 집약된 대목.


4.

   학창시절로 회귀하는,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몰입. 초콜릿을 다시 먹게 된 것까지 함께, 어떤 '상기', '기시감'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은데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가 힘들었다. (타이핑하는 현 시점보다 한참 전에 쓴 메모라서, 작품을 다시 읽지 않는 이상 뭐라 첨언 할 말이 없다. 애석하다!)


5.

   56p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음껏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내 몸속에서 뭔가를 몰아내고 싶다는 식으로 느꼈다. 몰아낸다고? 하지만 대체 무엇을 몰아낸다는 것일까. 나는 그것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무엇을 몰아낸다는 것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뭔가는 …>


   설명할 수 없는 뭔가에 대한 염증 : 허무감에 대한 것 같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방식으로 우리 삶에 스며들어 있는, 탈근대적 양식, 니체적 시간선, 그래서 필연적인 허무감.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관통하는 어떤 멜랑콜리의 감성, 하루키적 우울이 집약되는 대목.


6.

   61p <잠이 오지 않은 뒤로 내가 생각한 것은, 현실이란 참 얼마나 손쉬운가, 라는 것이었다. … 기계의 작동과 마찬가지여서 한 차례 운용하는 절차를 익혀버리면 그 다음은 끝없는 반복일 뿐이다.>


7.

   잠을 자지 못하는데도 건강한 몸. 61p. <팽팽함.> 생명력과 힘으로 충만해지는 서술자. 기계적 반복의 삶에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잠을 자지 않는 것은 곧 저항이다. "잠"이 영원회귀의 주기 양끝 분절로서 기능한다는 하루키의 발상. (8에서)


8.

   도서관에서 접하게 되는 잠에 대한 어떤 코멘트. <사람은 저마다 일정한 경향으로 치우치는 식으로 살아가며 그 경향을 벗어날 수 없다. 잠은 그 방향으로 치우쳐 있는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쉬게 함으로써 다음날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니까, 사람은 한 번의 잠을 단위(마디)삼아 일정한 경향을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관점이다. 주인공은 여기에 반감을 느끼는 것이다. 70p, <그 반복의 끝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 그건 내가 바라는 일이 아니다. … 잠 따위는 필요없어. … 나는 경향적으로 소비되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 나는 책을 읽을 것이다. 나는 잠을 자지 않을 것이다.>


9.

   80p, 남편의 얼굴에 대한 인식이 변화한다. 초반부에서 남편의 얼굴은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함'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추한 것', '늙어가는 것'으로 그 인식이 변해 있다. 반감이 노골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혹', '공포'에서 '혐오'로. 갈등의 고조이기도 하고.


10.

   결말. 엔진 시동이 걸리지 않는 차에 갇혀 괴한들의 습격을 받다. 93~94p, <뭔가 잘못되어 있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 나 혼자서 이 조그만 상자 안에 갇힌 채 어디로도 가지 못한다.>

   "나 혼자서 이 조그만 상자 안에 갇힌 채 어디로도 가지 못한다."는 진술. 결국 우리는 갇힌 채로 어디로도 가지 못한다. 하루키의 결론은 그렇다면, 니체적 시간성에 오염된 근대, 포스트모던 시대에서 우리는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관적인 결론이다.


11.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특기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잠'의 알레고리적 변용이 아주 독창적이고 성공적이었다는 것이다. (좀 난해하긴 하며, 최근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하루키가 매 작품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하기는 하지만.) 하루키적인게 뭔지 잘 보여주는, 함축적이고 깊이 있고 완성도 있는 단편이었다고 생각한다. 흠이라면 좀 어렵다는 것, 또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 잇겠다. 이건 하루키의 캐릭터인듯 하다.  하루키 특유의 멜랑콜리는 그의 문학에서 강한 색채를 담당하는 것 같다.


12.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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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습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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