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자신이 쓸 수 없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역설적으로 자신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그 순간 언어로는 전달 불가능한 뭔가가 불꽃처럼 다른 사람에게 옮겨붙는다. 상상을 통해서.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김연수의 해설 中
미니멀리즘이라고 한다. 추상적, 일반적인 것들을 구체적인 것, ‘글로 쓸 수 있는 것’으로 인수분해하는 일이다. 미니멀리즘의 대가라는 수식이 바로 이것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쓸 수 없는 것을 쓰지 않는 것’이다. 이 때 간결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다. 말할 수 없는 것을 애써 말하지 않음으로써, 역설적으로,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묵직한 목소리로. 그 때 텍스트의 힘은 활자가 아니라 여백, 독자들의 상상에 있다.
많은 것들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고, 혹은 이해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리며 살아간다. 그러면 필요한 건, 사실 우리 능력 밖인 것들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일이다. 욕심이나 오만을 인수분해하고, 더 작은 세계에 정착하는 일이다. 그 인수들을 찾아낼 때, 역설적으로,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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