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1.

    한국 아침 드라마 보는 기분이었다. 사랑은 정말 강력한 주제다.


    2.

    나는 어떻게든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사람임을 확인했다. '슬픔이 종이 밖으로 흘러넘치는' 이야기를 읽으면 너무 먹먹해진다.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다. 캐릭터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감정을 내 몫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다. <러브 레터>나 <냉정과 열정 사이> 같은 영화를 보고 끙끙 앓아 누웠던 건 그래서다. (이 작품들이 새드엔딩이라는 이야기까지는 아니고.)


    3.

    '다아시 씨'와 '엘리자베스'의, '리지'와 '일라이자'의, 매력! 캐릭터들이 너무 선명해서 외모와 몸짓, 습관과 말투와 목소리까지도 상상할 수 있었다. 작가는 창조주가 될 수 있다.


    4.

    제인 오스틴의 위트에 반해버렸다. 증오 없는 냉소. 그 시니컬한 포즈는 오히려 세상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세련되고 날카롭고 분별 있는 입담꾼. '오만'과 '편견'을 난도질하면서도 그녀는 분명, 사람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문득 제인 오스틴 같은 유머 감각을 가진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5.

    '고전'의 무게감. 아침드라마와 고전, 이런 이질적인 두 수사가 동시에 가능한 이유는 뭘까 생각해봤다. 아무래도 그 힘은 제인 오스틴의 시선에 있다. 위트에 실려 있는 날카로운 통찰과 시선.

    '시차'에 대해 생각했다. 시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떤 창조성을 가진다면, 그건 바로 그 '시차의 각도'를 인식하는 지점에서다. 시차를 가진다는 건 그냥 다르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다르게 보는 것이며 그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인식이 관건이다. 새로운 가능성은 바로 거기에 있다.

    '나는 너와 다르게 생각해'가 아니라(여기에서 그치는 건 위험할 뿐이다!) '나는 너와 이렇게 다르게 생각하는데, 이 시차에는 어떤 의미가 있고,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시차는 창조적이다.

    다른 것을 보는 게 아니라 같은 것을 다르게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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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습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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