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1월, 김연수의 수상소감. 스페인에서의 일에 대하여.>


    낯선 도시의 카페에서 … 저는 제 주위의 사람들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문자로 글을 썼습니다. … 그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사실은 저를 한없이 외롭게 했습니다. 그렇게 되자, 제가 적는 문자들은 지시대상을 잃어버리고 단순한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바뀌어갔습니다.

    그제야 저는 모국어가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형용사들이나 부사들, 관형절이나 조건절은 그 외로움 앞에서 한없이 부서졌습니다. 저는 악착같이 주어와 동사와 목적어 따위에 매달렸습니다. 문장들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단위들에. 거기에서 더 물러서면 이 연약한 모국어 체계는 단숨에 무너져내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모국어는 무중력 공간에 있는 것처럼 순수해져 언어 그 자체로 돌아가더군요. 결국 외로움의 끝에는 순수한 언어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언어는 전혀 외로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 외로움의 끝에 우리의 모든 삶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허무가 있는 게 아니라 순수한, 어쩌면 따뜻하다고 할 수도 있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게 이번 여행의 성과였습니다.


    <문학적 자서전 中>


    그때 나는 내가 간절히 읽고자 하는 바로 그 소설을 쓰려고 했는데, 그때까지 나는 그런 종류의 소설을 한 번도 써본 일이 없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설을 써온 것이다.


    <김연수가 가장 좋아하는 자기 글귀.>


    어둠 속에 머물다가 단 한 번뿐이라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그 빛을 잊지 못하리라. 그런 순간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됐으므로, 그 기억만으로 그들은 빛을 향한, 평생에 걸친 여행을 시작한다. 과거는 끊임없이 다시 찾아오면서 그들을 습격하고 복수하지만, 그리하여 그들은 때로 사기꾼이나 협잡꾼으로 죽어가지만 그들이 죽어가는 세계는 전과는 다른 세계다. 우리가 빠른 걸음으로 길모퉁이를 돌아갈 때, 침대에서 연인과 사랑을 나눈 뒤 식어가는 몸으로 누웠을 때, 눈을 감고 먼저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몇 개의 문장으로 자신의 일생을 요약한 글을 모두 다 썼을 때, 그럴 때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과거는 몇 번씩 그 모습을 바꾸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모습의 세계가 탄생했다. 실망한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 거대한 변혁의 시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살아갈 뿐이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자! 그들에게는 그들의 세계가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세계가 있다. 이 세계는 그렇게 여러 겹의 세계이며, 동시에 그 모든 세계는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믿자! 설사 그 일이 온기를 한없이 그리워하게 만드는 사기꾼이자 협잡꾼으로 우리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세계가 바로 우리에게 남은 열망이므로.


    <문평가 손정수의 김연수論 중에서. 김연수의 서사 방식에 대하여.>


    때로는 소설의 형식 역시 이와 같은 소통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 김연수는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되, 그 결과를 낭만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것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만들어내는 사건들의 모자이크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조각난 퍼즐을 맞춰가듯 얼핏 보기에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서사의 부분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시켜 나가는 방식은 그 자체가 참신한 서사를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작가가 염두에 두고 있는 소통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 서사의 조각들이 하나라도 없을 때 전체 이야기는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그 각각은 다른 것에 의해 대체되거나 다른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서로 다른 차원들이 관념적인 방식에 의해 하나로 지양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련을 맺으면서도 그 각자의 방식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습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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