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단어들

공부 2016. 4. 17. 09:57



「언어천재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에서 흥미로운 것들만.







1. Glamourous.


   글래머러스하다는 단어가 한참 유행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베이글 뭐 그런 말도 있고. 싫어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어원을 알고 나니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Glamourous는 grammar와 어원이 통한다고 한다. 로마 시대에 '문법에 통달한 여자'를 부르는 말이 변화한 것이 glamourous. 그 때는 여자의 몸이 그렇게 대접받지 못했던 거라고 할까.

   다만 '문법'이 가지는 뜻이 좀 넓다. 사람들은 저마다 세계를 이해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다르다. 말하자면 그게 '문법'이다. 마법의 주문 같은 거라고 생각해도 좋을까. 자기를 만드는 기술인 것이다.

   책의 저자는 '꾸미기', '가장하기' 등으로 의미를 조금 깎아내리고 있는데, 나는 로마인들이 말했던 '문법'이 그렇게 외면적이기만 한 차원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지만. 무튼, 그런 의미에서의 'glamourous'한 여자라면 대환영이다. 문법이든 몸의 문법이든 간에. XD




2. Carmen, charming.


   나는 노래를 잘 못 부른다. 음악은 정말 좋아하는데. 악기 연주는 그동안 달라붙은 게 있어서 어느 정도 한다 치지만 내 성대는 아무래도 악기가 아닌가보다. 그러니까, 내가 'charming'해질 날은 오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로마인들은 매력적인 여자를 무서워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노래 잘 부르는' 여자였다. 노래 잘 부르는 여자의 이미지는 이후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 예사로 나타나는데, 한 오페라(뭔지는 모르겠다. 책에도 자세한 설명은 없다)의 Carmen이 대표적인 예라고.

   Charming, Carmen, 둘 다 '노래에서 나오는 매력'을 뜻한다고 한다. 어원적으로 친척이라는 이야기다. 나는 노래를 잘 못 불러서 charming해질 수 없다 치지만, 나 대신 매력 어필 좀 해 달라고 내 색소폰 (오래된 실버 테너) 에게 carmen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궁상이래도 할 말은 없다.




3. Pretty, Cute.


   샤넬이 이 단어들을 그렇게 싫어했다고 한다. <pretty는 '사기' '거짓말' '술수'를 뜻하던 고대 영어 'prat'의 형용사형이다. ... 따라서 pretty는 눈속임이나 잔꾀를 부려 아기자기하게 잘 만들어진 옷이나 신발, 가구들을 보며 여자들이 "어머! 거짓말 같아!"라고 감탄하던 표현에서 '예쁘다'로 의미가 발전했다.> <cute 역시 원래 '날카롭다' '예리하다'를 뜻하는 'acute'에서 나온 말로 '머리가 예리해서 술수가 뛰어나고 거짓말도 잘한다', 즉 '잔꾀에 뛰어나다'를 뜻했다.> 고 한다.

   앞으로 pretty하다, cute하다는 말을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속어로 사용할 의향이 생긴다.




4. Luxury


   Luxurious하다는 말은, 한 마디로, '뼈가 삐었다'는 말이란다. (rofl) 고대 로마인들은 따뜻하고 배부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뼈가 삐었다'고, luxus한 놈이라고 불렀다. 후기 로마에서는 luxury가 '무절제한 성생활'을 뜻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나랑은 거리가 먼 단어. 이 단어 역시 나만의 비속어 리스트에 올려 뒀다. luxury한 사람들이 주변에 없잖아 있어서.




5. Amateur


   아마추어라는 말에는 어설프다는 뉘앙스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어원을 따져보면, 사랑을 뜻하는 라틴어 amor에서 amateur가 나왔으며 본뜻은 '애인'이라고 한다. 잘 하든 말든 그 일을 사랑하는 사람을 Amateur라고 부른다는 거다.

   나는 아마 아마추어도 못 될 거야. 어쨌든 꼭꼭 씹을 수록 좋은 말.




6. Psycho


   로마 신화의 애신 큐피드Cupid의 아내가 프시케Psyche였다. 에로스, 라고도 불리는 큐피드는 육체적인 사랑, 욕망을 뜻한다. 반면 Psyche는 영혼, 정신을 뜻한다. 묘한 조합.

   Psycho라는 단어가 psyche에서 나온 건 알고 있었는데, cupid와 psyche의 이야기는 새로워서 옮겨 놓는다.




7. French


   이건 재밌는 메모 정도. French disease = 매독, French kiss = 혀를 집어넣어서 하는 키스, French letter = 피임도구. 영국이 프랑스를 되게 싫어했나보다. 반대로 프랑스에서는 매독이 '영국병'이라고.




8. Mother, Metro


   <어원적으로만 보면 매일 지하철을 타는 사람은 매일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것이 된다. 지하철 시스템을 흔히 'metro'라고 부르는데, 이는 어머니란 뜻의 'mother'와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모도시로부터의 개척, 개척, 개척의 결과물이었다. 모도시에서 떠나와 폴리스를 개척한 사람들은 모도시를 '어머니가 계시는 도시'라고, 'metropolis'라고 불렀다. 이게 곧 '대도시'를 뜻하게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 사실. 그리고 19세기 중반, 프랑스 파리에서 지하철이 개통된다. 지하철 공사의 명칭은 '대도시 철로공사 chemin de fer metropolitain.' 이 말이 줄어들면서 metro라는 단어가 지하철의 이름으로 자리한다. (파리보다 먼저 지하철이 생긴 영국에서만 지하철의 이름이 'underground'라고)

   마더, 메트로, 마더, 메트로, ...




9. Cappuccino


   커피를 아주 좋아한다. 지금도 마시고 있다. 각성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고 (약발이 받을 때도 있고 안 받을 때도 있어서) 맛있어서 좋아한다. 카페에 가면 기분에 따라서 딱 세 종류만 시킨다. 아메리카노, 혹은 모카류, 그리고 카푸치노. 아메리카노는 무난해서 좋고 모카류는 달달해서 좋다. 카푸치노의 매력은 단연 계피향과 거품이다. 그렇게 달지도 않지만 향 덕분에 씁쓸하지도 않다. 묘한 품격이 있는 커피다. 지적인 사람들이 좋아한다고도 하는데, 카푸치노를 좋아한다고 지적인 사람은 아니니 딱히 폼 잡으려고 좋아하는 건 아니다.

   1500년대 이탈리아 동부의 '마테오'라는 수도승은 지나친 절제심 때문에 이단으로 몰렸다. 그래서 소수의 제자들과 함께 산속으로 들어간다. 이 수도승들은 옷 한 벌로 평생 돌아다녔다고 한다. 사람들은 수도승들의 옷을 따서 '모자 달린 놈들'이라고 그들을 불렀다. 영어로 옷에 달린 모자는 capuche, 이탈리아인들은 capuche를 'cappuccio'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 수도승들은 카푸초 수도승들이었던 셈.

   그런데 이 카푸초 수도승들의 옷이 당시 유행했던 거품 크림 커피랑 비슷한 색이어서, 거품 크림 커피 일체를 cappuccino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내가 좋아하는 것의 어원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그래야 뭐 잰척이라도 하지.




10. Tuning


   관악단 튜닝은 참 성가시다. 관악기라는 거 자체가 피치에 굉장히 민감하다. 사람의 호흡을 불연속적으로 구획화할 수 없기 때문에, 호흡으로 연주하는 관악기 또한 그 피치를 정확히 맞추기 힘들다. 정말 미세한 호흡의 차이나 앙부셔의 차이가 그대로 피치를 흔들어버린다. 그래서 숙련되지 않은 연주자들은 튜닝부터 어렵다. 나는 이제 겨우 튜닝이 할만한 정도다. 15개월 남짓을 불었는데도. 대신 관악단 튜닝이 잘 된 날은 묘하게 기분이 좋다. 십수 명 이상의 연주자들이 한꺼번에 같은 음 Bb을 내는 것을 상상해 보면 된다. 관악기는 다른 악기들보다 훨씬 인간 목소리에 가까운 음색을 가졌다. 튜닝만 하고 있어도 종종 음악에도 생명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몽골 유목민들이 활을 좋아했다는 건 흔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이 활을 응용한 악기, '마두금'을 즐겨 연주했다는 건 흔하지 않은 이야기다. 활 두 개를 비비기만 하면 소리가 난다. 이게 바이올린의 기원이 된 거다. 살인 도구에서 악기가 탄생했다는 건 재밌는 아이러니다. 죽음과 쾌락은 정말로 맞닿아 있는 걸지도 모른다.

   여하튼 바이올린 제작자 아마티는 고대 로마시대 과학자 보에티우스의 이론을 참고했는데, 고대 로마에서는 줄을 잡아당겨서 내는 소리를 'tone'이라고 했단다. 거기서 파생되어 'tuning'이라는 단어가 바이올린 피치를 맞추는 말이 되었고, 거기서 더 확장된 것이 오늘날의 악기 tuning이다. 그렇다고 한다.




11. Animation


   애니메이션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자대 배치받고 나서 생활관 선임이 즐겨 보던 '빙과'라는 일본 작품을 같이 본 적이 있는데, 일본 애니메이션판은 역사가 있어서 그런지 좋은 작품들이 더러 있네 싶긴 했다.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그 정도. 하지만 애니메이션이라는 단어는 좋은 느낌이 든다.

   어원적으로 animation은 '영혼'이라는 뜻의 anima를 동사화한 것이다. 영혼을 불어넣는 일이다. 멋지다!




12. Design


   주변에 디자이너 지망생들이 많다.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일이다. 예술가들이니까. 그래서 design이라는 단어를 이 책에서 발견했을 때 혹했다. 재미는 없는 이야기지만.

   그냥 이탈리아 어느 가구점 사장이 게으른 사람이어서, 가구를 그려만 주고 기술자들에게 만들라고 하청을 준 것이 design이라는 단어의 기원이라는 거다. sign만 해서 넘겨준 거니까, 그게 변해서 design. 실제로 이 방법을 널리 떨친 건 가구점 사장의 제자였다고 한다. 이 '만테냐'라는 이름의 제자가 바로 최초의 designer인 셈.




13. Prestige


   마법, 마술이라는 단어가 주는 신비감을 나는 좋아한다. 합리, 논리, 이성, 이런 것들에 대해 괜히 거부감이 들어서 그렇다. 논픽션보다는 픽션이 좋고 리얼리즘보다는 판타지가 좋다. 별 여지가 없는 딱딱한 것들보다는 내가 다 알 수 없을지라도 베일 너머가 더좋다는 이야기다. 오늘날 명성이라는 뜻을 가진 prestige는 옛날에는 '마술 쇼'를 뜻하는 단어였다고 한다.

   마술 쇼의 원조로 '후댕'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게 좀 재밌는 이야기다. 후댕은 프랑스의 명품 시계 장인이었다. 책방에서 실수로 시계 교재가 아니라 마술 교재를 배달해 준 일이 있었고, 그걸 계기로 시계 장인은 마술에 빠져버린다. 그 장인적 기질이 마술에 쏟아지면서 후댕은 기상천외한 마술들을 직접 기획하고 시연하게 된다. 시계 기술자와 마술사. 판타지물스러운 조합이어서 마음에 든다.

   어원적으로 'pre + stringere' , 즉 '눈앞을 묶는다'라는 뜻을 가진 게 prestige다. 마술은 눈속임이다, 라는 뉘앙스다. 그래서 오늘날의 '명성'이라는 뜻으로 이어졌나보다.




14. Magic


   13과 이어지는 이야기. 고대 페르시아의 지식인들은 '마지'라고 불렸다. 지식을 자기네들이 독점할려고 자료들을 독하게 숨겼는데, 이 '마지의 비밀'이 magic의 어원이 되었단다.

   이들의 '마술'은 사실 과학이었다. 정확히는 천문학과 공학, 옛날부터 문명을 발전시키는 주력이 되었던 학문들. magician은 그래서 공학자다. 부대 특성상 마술'병'들이 있는데, 이들이 작업하는 걸 보면 공학자라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마술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건 마력이 아니라 칼과 가위, 종이, 풀, 심지어는 톱과 망치, 이런 공구들이다.




15. Passion


   그리스의 수사학은 유명하다. 그 두 가지 축이라면 바로 logos와 pathos겠다. 대충 말해 logos가 논리에 호소하는 거라면, pathos는 감정에 호소하는 거다. 그리스어로 pathos는 '아프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열정이라는 뜻의 단어 passion은 바로 이 pathos에서 나왔다. 열정은 고통이라는 건가.

   이야기는 이렇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이야기 또한 유명하다. 초기 기독교 설교사들이 좋아하던 레퍼토리다. 사람들을 설득해 신자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보다 감동적인 이야기가 없다. 말 그대로 pathos, 아픔을 자극하는 거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생각하면 고통과 열정이 연결된다. 인간에 대한 예수의 사랑과 열정이 십자가에 못박혀 그가 느꼈을 고통과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 passion이라는 말은 남녀 간의 불타는 사랑 정도로 그 의미가 변화했다. 그래도 뭐, 비슷하니까.

   책에서 저자는 <페르시아의 '마지'와 그리스 철학자들의 'logos'를 물려받은 로마 제국이 'passion'을 앞세운 기독교인들에게 항복한 것을 보면 눈물 한 방울이 백만 대군과 천 권의 책도 녹일 수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라고 말하는데, 나름 공감한다.








0. 외국어, 보다 언어가 재밌다. 조잡하지만 조각조각은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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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습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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