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순 외. '와글'. 문학동네.


   7p

   정치란 권력을 어떻게 배분하고 유통할지 결정하는 메커니즘입니다.


   16p, 피아 만시니.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15세기의 정보기술을 바탕으로 19세기에 고안된 정치제도와 부딪치며 살아갑니다. 이 시스템의 특징을 살펴봅시다. 우선 이것은 500년도 더 전에 만들어진 정보기술(활판인쇄술)에 맞춰 설계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곤, 극히 소수가 다수의 이름으로 매일매일 (중대사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다수가 할 수 있는 일은 2년에 한 번 투표하러 가는 것밖엔 없습니다. 둘째로, 이런 정치 시스템에 참여하는 비용은 놀라울 정도로 높습니다. 당신은 상당한 재력과 영향력을 가주거나, 인생 전체를 정치에 걸어야 합니다. 정당의 일원이 되어야 하고 천천히 서열이 올라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언젠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테이블에 앉는 그날이 올 때까지.

- 'How to upgrade democracy for the Internet era', TED, 2014


   18p, 박명림

   미래로 나아가려 할 때 지금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점은 현대 공화국의 기축제도, 즉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이다. 그것은 곧 건국 초기 미국으로부터 발원하여 현대민주주의를 정초한 제임스 매디슨 식의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특히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거의 해결하지 못하며 점점 더 국민과 시민민주주의가 아닌 엘리트와 대표의 민주주의로 전락하고 있는 미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볼 때 그에 기반하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에서 직접민주주의 요소의 강화는 더욱 절실해 보인다.

- 박명림, 김상봉, 「다음 국가를 말하다-공화국을 위한 열세 가지 질문」, 웅진지식하우스, 2011


   21p

   직접민주주의적인 시민참여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사례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적인 성공의 조건들이 있습니다. (다음은 요약!)

   1. 의제 제기의 일상성, 상시성, 일상적 상시적 공론가능성.

   2. 합의 결과의 반영 신속성

   3. 공공정보의 투명성, 접근가능성

   4. 자치집단의 다양성, 소수자 발언권의 보장.

   5. 수평적 의사결정구조.

   6.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대변할 정치적 주체를 만들 자유가 보장.

   ...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보다 확대, 강화해야 하는 21세기형 민주주의의 궁극적 목표이기도 합니다.


   25p

   나쁜 정치는 인간의 나쁜 본성을 자극합니다. 혐오와 부패, 탐욕과 집착, 허세와 위선을 조장합니다. 좋은 정치란, 인간의 선한 본성을 북돋는 정치입니다. 이해와 배려, 양보와 타협, 신뢰와 용서, 더불어 사는 삶의 즐거움을 깨닫게 합니다. 정치의 룰은 그 사회의 규범과 문화를 좌우하며 시대의 품격을 규정합니다. 최선의 합의에 따라 해법을 찾고, 공정한 룰에 따라 권력의 배분이 이루어지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거라는 희망만 있어도 웬만한 어려움은 함께 감당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43p

   PAH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가장 큰 장벽은 외로움과 공포입니다. 병든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치명적인 질병은 가난에 주눅드는 것입니다. 세상은 모든 것을 잃은 사람에게 "이건 네 잘못이야!"라고 손가락질하면서 가난을 부끄러워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신체적 상처를 남깁니다. 다행히도 PAH 멤버들은 가난이 온전히 개인의 탓이라는 주장을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값진 승리입니다.

- Pau Faus, Si se Puede, <Seven Days at PAH Barcelona>, 2014


* 15' 5월, 바르셀로나, 풀뿌리 시민정당 바르셀로나 엔 코무, 지방선거 득표율 1위.

* 바르셀로나 첫 여성 시장 아다 콜라우Ada Colau

* 2009' 주택담보대출 피해자들을 위한 플랫폼 PAH

* 스페인, 11' 5. 15. '정부의 긴축정책 반대, 실업 문제 해결, 빈부격차 해소, 부패 척결, 기성정당의 정치적 특권 타파'를 주장하며, 15M 운동. Movimiento 15M. 스테판 에셀, 「분노하라」 열풍이었기도. 많은 스페인(유럽) 반기성 신생정당의 근원.


   63p

   우리가 마주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마법의 주문은 없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두려움을 떨치고 문제를 풀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지난 과정에서 얻은 교훈들은, 우리 스스로 뚜렷한 목표와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조직할 때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역사상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는 과감하고 창의적인 첫걸음이 요구되는 매우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우리에게 새로운 도시를 상상할 능력이 있다면, 그러한 도시를 만들 수 있는 힘 역시 갖고 있다.

   우리는 선거에서 승리하여 지역과 일터와 문화계에 소속된 사람들을 위해 제도를 변화시킬 조직, 바르셀로나 엔 코무를 설립한다. 우리는 연정이나 한갓 허황된 말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오래된 게임의 규칙을 바꾸고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모든 사람들의 정체성을 존중하고 단순한 산술적 합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만들고자 한다. 우리는 바르셀로나가 이미 그것을 가능케 할 조건을 갖추었다고 믿는다.

- 바르셀로나 엔 코구가 '집권 여당'이 되기 전에 발표한 성명서의 일부.


70p

   정치인은 진실을 덮기 위해 거짓을 사용하고, 예술가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거짓을 사용한다. - 영화 <브이 포 벤데타>


95p

   그러나 강력한 리더십은 투명한 합의 절차를 거쳐 시민의 탄탄한 지지를 받는 데서 오는 것이지, 리더 개인의 고집이 강하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115p

   (아이슬란드 해적당 이야기) 비르기타는 정치를 하는 것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저는 정치인으로서의 활동을 해커의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특히 불가능에 대해 생각지 않는데, 한계를 인식하는 순간 그것에 얽매이게 되거든요. 한계를 인식하지 않을 때 그걸 부술 가능성도 생기는 거죠.

   여기서 말하는 '해커'란 ... 새로운 접근으로 기존의 관습이나 규칙을 변화시키는 혁신가를 가리킵니다.


119p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의 창time window'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아주 금방 왔다가 사라지죠.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지 말고,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 "We have to help the system to collapse", WeAreChangeRotterdam, 2014, 12, 5. 인터뷰. 비르기타.


148p 벤 나이트

   "인간은 유일하게 지식을 축적하는 동물입니다. 컵 하나를 만들 때도 조상들이 해온 시행착오를 뇌 속에 젖아하고 있죠. 집단지성이 발휘되는 유일한 종입니다. 집단 내에서 사람과 사람 간 권력의 불균등은 불가피하지만 그 문제를 잘 다룰 수만 있다면, 상호이해와 협상을 통해 전망을 공유하고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할 수 있게 됩니다."

- 와글이 직접 인터뷰.


152p 션 파커.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억만장자가 되는 게 쿨하다고요? 천만에요. 제도권 안에서 부자가 되는 건 쿨한 것과는 정반대예요. ... 진짜 쿨한 건, 기성의 낡은 문화에 대항하는 혁명가가 되는 겁니다."

   해커는 "오래 존속해온 시스템의 약점을 재빨리 파악하고, 그것을 무너뜨릴 새로운 해법을 찾아내는 혁신적 이상주의자"라는 게 그의 주장...

- "Lunch with the FT: Sean Parker", Financial Times, 2011. 3. 11.


159p 플랫폼 '브리게이드'의 CEO 맷 머핸

   "많은 사람들은 정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정치에 냉소를 보내고 환멸을 느낀다고도 이야기하죠. 그러나 우리가 지켜본 바로, 그들은 각자의 관심과 주장이 담긴 자신들의 이슈를 갖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분명한 관점을 갖고 있었어요."

- "Sean Parker's Brigade App Enters Private Beta As A Dead-Simple Way Of Taking Political Positions", Tech Crunch, 2015.6.17.


165p 플랫폼 데모크라시OS 공동창립자 피아 만시니, 테드 강연에서.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15세기의 정보기술을 바탕으로 19세기에 고안된 정치제도와 부딪치며 살아갑니다. (...) 이 제도에 사용되는 언어는 변호사들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난해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몇 년에 한 번 권력자들을 선택할 수는 있찌만, 그들이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습니다. (...) 이런 시스템이 다음 두 가지 결과를 낳은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바로 침묵 혹은 소음입니다. 사람들이 정치를 혐오하게 만들어 침묵하게 하거나, 그저 무의미한 소음만 생산하는 결과를 불러올 뿐이죠. 우리 시민들이 원래 무관심하고 무책임하다고 하지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공청회에, 그것도 휴가를 내지 않으면 갈 수도 없는 평일에 열리는 공청회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누가 우릴 비난할 수 있단 말입니까?

- 'How to upgrade democracy for the Internet era', TED, 2014


212p~ 영국 에버딘 대 사회학과 크리스티나 플레셔 포미나야 교수, 공개포럼 <오픈소스 정치의 개막: 99%의 지혜와 1%의 상상력>, '기술결정론과 우리의 과제', 강연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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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문점들

   1.

   온라인은 변화와 혁신의 공간이지만, 가속도(관성)도 만만찮다고 본다. 이런 가변적, 유동적인 공간에서 긍정성만을 보기는 힘들지 않나. 집단지성에 대한 신뢰를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가는 것 같다. Tool, 적절한 시스템만 주면 집단지성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는 식이다. 설득을 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도 물론 집단지성과 정보균형에 찬성하는 사람이지만, 확신이 필요하다. 중우정치를 우려하는 이들이 공격해 온다면 뭐라고 할까 싶은 거다.

   물론 저자 이진순 씨가 한 인터뷰에서 언급했듯이, 단순 다수결과 디지털직접민주주의의 수리논술주의적 투표방식은 의사결정의 합리성에 있어서 수준 차이가 나며, 개인의 정보접근성이 좋아진 현대에서 중우론은 넌센스다, 라는 주장들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개인과 집단은 다른 문제'라는 거다. 합의 과정에서 오류는 얼마든지 생긴다. 구성에는 딜레마가 있다.


2.

   그래서 첫번째. 정보의 문제다. 어떤 issue에 대해 온라인에서 의견 교환이 이루어질 때는, '해당 시점에 접근 가능한 정보'가 개인 의사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이른바 '팩트'가 중요하다는 거다. 통계 수치 등으로 확실하게 주어지는 팩트가 있는가 하면 누군가의 주관이나 의도에 의해 편집되어 떠돌아다니는 정보도 적지 않다. 키치! 심지어 수치화되어 절대적인 팩트로 여겨졌던 정보들조차도 간단한 조작으로 왜곡된 것일 수 있다. 충분히.

   문제는, 온라인이라는 공간 특성상, 유통되는 정보들이 지속적인 정보 교환을 통해 진리치로 수렴할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어떤 정보의 수용과 전파에 관한 관성도 크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여론은 '불붙듯이' 형성된다.

   사실 우리는 무서운 거다. 정보의 시대지만 무엇이 옳은 지 알 수가 없다. 고질적인 무기력증이다. 세대병.

   그러니까, 지금의 디지털민주주의에게 묻고 싶은 거다. '완전정보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말인가요?'


3.

   과연 직접민주주의가 소수를 효과적으로 대변하는지. 동일선상에 서 있지 않은 사람들을 '수평, 평등'한 의사 합의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정말로 평등한가? 모두가 딱 한 표만큼만 센 상황에서 소수가 설득력, 즉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발언권만 주면 존중하는 거라고 볼 수 있다. (문득, 꼭 소수가 권력을 가져야만 변화가 일어나나, 싶었는데, 다시 생각해봐도 이건 '주체'의 문제, 소수자 관련 합의의 지속가능성 문제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딜레마에 가깝다. 가중치를 줄 것인지 말 것인지. 애매하네.


4.

   합의 불가능한 문제를 합의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정치적 이슈에 딜레마가 얼마나 많은데. 서론에서 이야기했듯이, 정치는 권력을 배분하는 문제다. 나는 이 배분이 결국 제로섬 게임이라고 본다. 초기에야 불균등한 권력이 재배분되겠지만, 모든 정치체는 '장기적으로' 이 문제 앞에서는 시한부다. 궁극의 정치체는 불가능한가. 직접민주주의는 여기에 대한 답을 어떻게 내리겠는가. 심지어 이 '배분'의 결정권을 수천만의 민중들에게 넘겨주는 일인데.

   애로의 불가능성정리를 생각한다. 합의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합의는 더 어려워진다. 포퓰리즘적 전체주의도 우려해볼만한 일이다.


5.

   이진순 님과 와글 멤버들을 직접 만나고 문답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 와글 멤버 한 분께 이 질문들을 드렸다. 사실 답을 바란 것도 아니었고, 공격하는 것도 아니었고, 단지 생각을 나눠보는 게 어떠냐는 정도였다. (근데 좀 까칠했다. 불친절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온갖 논변을 거쳐서 매번 듣던 질문에는 진절머리가 나는 열정적인 액티비스트의 모습이었다.) 답변을 정리해 둔 메모가 있었던 것 같은데, 못 찾겠다.


끝.

Posted by 습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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