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의 공부법」, 권용선, 역사비평사


10p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공부'를 팽개치지 않았다. 공부하는 것만이 개인적인 불행뿐 아니라 비루하고 염치없는 세상을 견디는 방법이며, 고장 난 세계를 인간의 힘으로 다시 살 만한 곳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는 방식이라고 그는 믿었다.


10p

   그는 일관되게 '바깥'의 삶을 지향한 존재였다. 학교보다는 학교 바깥, 고향보다는 낯선 도시들, 유행하는 물건보다는 오래된 사물을 사랑했다. 자신이 독일의 유대인 소수자임을 한시도 잊지 않았고, 지식과 학문의 체계 안에서 인정받는 지식인으로 살기보다는 오히려 그 지식과 학문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균열을 내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위치감각을 유지하는 것, 이것만이 그에게는 중요했다. 그는 새로운 것보다는 '낡은 것'에 집착했다. 쓸모없는 것에서 쓸모를 발견하고, 너무나 평범하고 사소해 보이기 때문에 거창하고 세련된 지식의 영역에서는 배제되었던 어떤 것들을 말하거나 실천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끊임없이 질문했다. 사람과 시대에 대해, 사물의 배치와 제도의 폭력에 대해, 이성의 한계와 다른 감각의 능력에 대해. 이런 질문들에서부터 그의 공부는 출발했고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되었다.


16p

   "벤야민은 쉬지 않고 썼다. 생각이 떠오르면 지체 없이 썼다. 제대로 된 종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대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 위에 썼다. 이런 식으로 휘갈겨 쓴 단상들을 다시 새로운 작업 속으로 그대로 삽입해 넣거나 수정해서 첨부하곤 했다."

   「Walter Benjamin's Archive」, p.31


22p

   그는 대중매체와 광고가 현실을 장악하기 시작한 시대에 그것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글쓰기의 혁명적 내용뿐만 아니라 충격적 표현 방식도 함께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 자본주의의 도구로 자본주의를 타격하기. 누가 도구를 사용하는가, 그것을 어떤 목적으로 어디에 사용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그는 자신의 상황과 조건을 언제나 하나의 새로운 실험과 연관지었다. 그것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매번 중요한 공부였으며, 그 때문에 그는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26p

   그는 "모든 언어 이전의 읽기, 동물의 내장, 별들 또는 춤에서 읽기"와 같이 '씌어지지 않은 것'을 읽어내는 미메시스적 재능이 현대에 이르러 문자와 언어로 진입하여 "글쓰기와 읽기의 빠른 속도가 언어 영역에서 기호적인 것과 미메시스적인 것의 융해 과정을 상승"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언어는 인간에게 남아 있는 미메시스적 태도의 최고 단계인 것이다.


31p

   "그렇습니다. 저는 자유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의 출구만을 원했습니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디든 관계없이  그 출구가 하나의 착각일지라도 말입니다.  전진, 전진! 궤짝 벽에 몸을 밀착시킨 채 팔을 쳐들고 가만히 서 있지만은 말아야 합니다."

- 카프카,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벤야민은 사라진 길의 흔적을 추적하고 유물을 캐내듯 기억을 발굴하고 이미 자리 잡은 길을 의심하고 흠집 내는 방식으로, 혹은 길이 아닌 곳에서 길을 발견하는 방식으로 출구를 향한 지도를 그려 나갔다. 이를 위해 그는 언제나 '파편'이 필요했으며, 또 그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어디에서나 길을 보기 때문에 그 자신은 언제나 교차로에 서 있다. 어떤 순간에도 그는 다음의 순간이 무엇을 가져다줄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현존하는 것을 그는 파편으로 만드는데, 그것은 파편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파편을 통해 이어지는 길을 위해서이다."「파괴적 성격」, 29p 파편들이 놓여 있는 자리를 연결하고 그것들을 새로운 자리에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벤야민의 사유의 별자리는 그려졌다. 그것은 길을 잃고 헤매는 막막한 시대에 밤하늘의 별을 보며 찾아가라는, 그가 만들어낸 하나의 내비게이션이었다.


64p

   익숙한 것을 익숙한 그대로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불화하는 것, 익숙한 것을 새롭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 그것을 위해 자신의 신체를 독특한 방법으로 '연습'하는 것, 이런 것들이 벤야민이 도시를 여행하는 법이고 나아가 그만의 독특한 공부법 전체이기도 하다.


   '어떤 도시에서 길을 잘 모른다는 것은 별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마치 숲에서 길을 잃듯이 헤매는 것은 훈련을 필요로 한다. 헤매는 사람에게 거리의 이름들이 마치 마른 잔가지들이 뚝 부러지는 소리처럼 들려오고, 움푹 패인 산의 분지처럼 시내의 골목들이 그에게 하루의 시간 변화를 분명히 알려줄 정도가 되어야 도시를 헤맨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을 나는 늦게 배웠다. 그 기술은 내 공책들 압지 위에 그려진 미로들에 처음으로 흔적을 남긴 어떤 꿈을 실현시켜주었다. -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35~36p.


   오히려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야말로 낯선 장소에서만 가능한 색다른 경험이며, 그것을 통해 애초에 의도하지 않았던 많은 사물과 역사,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진짜 삶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여행지의 지도가 아니라 낯선 것을 최대한 낯선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잘 헤매는 기술이 절실히 필요했다.


78p

   '가능한 한 여러 차원의 경험을 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한 장소에 대해 알게 된다. 한 장소를 파악하기 위해선 우린 사방에서 그 장소를 향해, 또한 그 장소로부터 동서남북 사방으로 다시 가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 장소는 우리가 파악하기도 전에 전혀 예상치 못한 길을 통해 서너 번은 우리에게 달려든다.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우리는 그 장소를 방향을 찾는 기준으로 활용한다.' -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 64p


91p

   벤야민은 모스크바 여행을 통해 자신이 떠나온 곳, 즉 베를린을 다시 발견했다. 그 결과 모스크바에 관한 에세이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를 알게 되기 전에 먼저 모스크바를 통해 베를린을 보는 법을 배운다."

   어쩌면 모든 여행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여행은 낯설고 새로운 것과의 만남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우고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지만, 언젠가는 일상의 삶이 있는 원래의 출발지로 되돌아가야만 한다는 점에선 삶의 예외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여행의 진정한 의미, 혹은 여행에서 배울 만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낯선 곳의 경험으로 익숙한 삶의 공간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는 데 있지 않을까? 벤야민의 여행이 바로 그러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도시와 사람들의 모습은 정신적 상태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정신적 상태에 대해 이런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는 것이야말로 러시아 체류에서 얻은 것 중 가장 확실한 것이다. 러시아를 조금밖에 알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러시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의식적인 지식을 가지고 유럽을 관찰하고 판단하는 것을 배운다." -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 273p.


113p : 벤야민 사상 체계 일반에 대한 꼭지.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19세기 파리로의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것은 벤야민 스스로 창안해낸 여행안내서, 아니 한 장의 지도라고도 부를 수 있을 듯하다. 아케이드에서 시작된 이 지도에는 일반적 의미의 랜드마크가 없다. 유명한 지형지물도 등장하지 않고, 공간을 균질화하거나 시간을 괄호 치지도 않는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지도 위에는 다양한 항목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펼쳐져 있다. 그것은 철골 건축, 석판화, 파노라마, 철도, 거울, 사진과 같은 사물일 때도 있고, 생시몽, 푸리에, 마르크스, 보들레르, 도미에, 위고 등과 같은 인물일 때도 있으며, 인간학적 허무주의, 인식론과 진보 이론, 인간학적 유물론과 같은 철학적 방법론일 때도 있다. 그런가 하면 패션, 파리의 거리, 조명 방식들, 복제 기술, 코뮌, 파리의 몰락과 같이 동일한 층위에 배치될 수 없는 것들도 병렬적으로 놓여 있다.

   벤야민이 만들어낸 지도는 하나의 기준에 따라 분류되고 체계적으로 자리 잡아 전체 속에 통일성을 이루는 요소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낱낱의 작은 파편들이 각자의 고유한 색깔과 내용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19세기의 파리라고 하는 전체를 품고 있는 일종의 퍼즐 형태의 지도이다. 이 퍼즐은 그것을 손에 쥐는 사람에 따라 매번 다른 형상을 만들어낸다. 벤야민은 이것을 '문학적 몽타주'라고 불렀다. "문학적 몽타주. 말로 할 건 하나도 없다. 그저 보여줄 뿐."「아케이드 프로젝트 I」, N 1a, 8


117p

    실제로 그는 자기 앞에 있는 누군가 혹은 누군가가 쓴 텍스트를 최선을 다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통해 이전의 자기 자신과 다른 존재로 변화하는 데 힘을 쏟았을 뿐이다.

   이를테면 그가 프루스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정작 프루스트를 이해하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시 말해 자신이 이해한 프루스트가 얼마나 진짜 프루스트에 가까운지, 또는 프루스트의 '의도'에 얼마나 가깝게 다가갔는지는 그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프루스트들, 즉 프루스트에 관한 글들이 있고, 모두들 자신의 의견이 가장 정확하게 프루스트를 이해한 것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지금 내게 프루스트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 필요의 방향과 목적, 크기와 의도만큼 프루스트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더욱더 중요한 점은 스스로 프루스트 속으로 들어가 그가 되어봄으로써 다른 자신을 체험해보는 것, 그리하여 벤야민도 프루스트도 아닌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안하는 것이 아닐까.


118p

   벤야민이 누군가에 대해 공부하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식은 그 대상과의 거리를 철저하게 지워버리는 거였다. 그것은 자신이 공부하는 대상을 - 그 대상이 누구 혹은 무엇이든 간에 - 이미 갖고 있는 기존의 지식이나 편견 속으로 데려오는 방식이 아니라, 그 자신이 대상 쪽으로 이동하고 스며드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즉 다른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 그의 공부법이었다.


*122~147p : 프루스트와 벤야민. 기억, 역사에 관한 서술들.

141p

   벤야민은 모든 역사 기술이 깨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된다면서, 이 때문에 "사적유물론자는 역사의 서사적 요소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역사가는 특정한 시대, 특정한 삶, 특정한 작품으로 역사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벤야민은 역사적 유물론자가 공허한 연대기적 시간을 거부하고 '역사의 연속성'을 폭파해서 그 시대로부터 무엇인가를, 즉 "그 시대로부터 삶을, 그리고 그 생애로부터 한 작품을 끄집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서만 "한 작품 속에 필생의 업적이, 필생의 업적 속에는 한 시대가, 그리고 한 시대 속에는 전체 역사의 진행 과정이 보존되고 지양"「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348p 되기 때문이다.


154p

   상징이 초월적 세계를 견고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면, 알레고리는 그 견고하고 부동적인 세계의 질서와 현실 너머의 세계로 향하던 사람들의 시선을 현실 속, 때로는 죽음을 포함하는 비참하고 지저분한 진탕의 세계로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알레고리 작가는 완결된 세계 혹은 거짓 총체성에 맞서기 위해 사소하고 무의미한 낱개의 파편들에 주목했고, 그것들을 다시 하나의 장소에 그러모아 새롭고 낯선 무엇인가를 보여주고자 했다.

   알레고리는 그것을 만드는 주체에 따라 매번 다른 사물과 다른 의미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 작가의 손에서 하나의 사물은 기존의 의미와는 다른 무언가로 다시 표현되며, 이를 통해 작가 역시 무언가 다른 것을 말하게 된다.

   

   무엇보다 그는 파편과 부분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알레고리의 특성에 주목했고, "알레고리적 의도에 포착된 것은 일상적 삶의 연관에서 분리"된 것이며, 또한 그것이 "예술이든 삶이든 모든 '기존 질서'로부터 생겨나는 가상을 추방"「아케이드 프로젝트 I」, J57, 3 하는 효과를 지닌다는 점에 긍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기존의 질서를 미화함으로써만 공고하게 유지되는 전체라는 가상에 맞서 벤야민이 싸우는 방식은 보들레르부터 배운 알레고리의 특성, 즉 각각의 부분과 파편들의 고유성에 주목하는 것이었다.


159p

   바로크 시대의 비애극과 보들레르로부터 알레고리의 가치를 발견한 벤야민은 자신의 역사 연구 방법론에 이것을 도입했다. 벤야민은 이를 유물론적 역사 기술의 방법으로 이해했고, 그것이 갖는 파괴적이고 비판적인 의미가 역사의 연속성을 분쇄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우물론적 역사 기술은 대상을 무작위적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대상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흐름에서 떼어낸다."「아케이드 프로젝트 I」, N 10a, 1 알레고리가 특수한 것을 통해 보편적인 것을 이해하는 방법이었듯이, 벤야민의 유물론적 역사 기술은 역사 진행의 연속으로부터 대상을 떼어내어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그 진면목을 발견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를 전제로 할 때, 부분들이 갖는 고유성은 사라지고, 이때 전체는 '하나의 가상'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188p

   사실 벤야민에게 더 핵심적인 고민거리는 어떤 언어로 글을 쓸 것인가의 문제보다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쓸 것인가에 있었다. 즉 새로운 종류의 글쓰기를 실험하고, 이를 통해 고유한 문체를 창안하려는 욕망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단지 하나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문체와 스타일에 관한 문제는 기존의 학문적 질서와 글쓰기 방식을 파괴함으로써 폭넓은 독자 대중과 소통하고, 그들과 함께 현실의 문제를 들추어내며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벤야민 자신의 혁명적 기획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문학이 중요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오직 실천과 글쓰기가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괄적 지식을 자처하는 까다로운 책보다, 공동체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더 적합한 형식들, 예컨대 전단, 팸플릿, 잡지 기사, 포스터 등과 같은 형식들이 개발되어야 한다. - 「일방통행로」, 69쪽

   지식인은 글을 읽고 쓰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하지만 지식인이 구사하는 언어는 대체로 학문의 세계에서만 통하는 폐쇄적인 것이다. 모든 분과 학문의 체계는 고유한 개념과 언어적 질서의 카테고리 속에서 작동하며, 그것이 이른바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폐쇄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인들의 언어는 지식-권력의 증거이다. 벤야민은 이러한 지식과 학문의 보수적인 성격에 비판적이었고, 지식인 혹은 문인의 글쓰기가 의미 있으려면 실천과 글쓰기가 정확하게 일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의 실천은 자신이 말한 것이나 글 쓴 것과 행동이 괴리되지 않는 상태, 또는 최소한 그 괴리를 좁혀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그는 "훌륭한 작가는 자기가 생각한 것 이상을 말하지 않는다"라고 했던 것이다.

   

   일체의 해설이나 설명 없이 인용문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 그것을 위해 글을 쓰는 주체의 자리를 지워버리는 벤야민의 색다른 글쓰기 실험은 한편으론 카프카의 어떤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진짜 인디언이라면, 달리는 말에 서슴없이 올라타고, 비스듬히 공기를 가르며, 진동하는 땅 위에서 이따금씩 짧게 전율을 느낄 수 있다면, 마침내는 박차도 없는 박차를 내던질 때까지, 마침내는 고삐 없는 말고삐를 내던질 때까지, 그리하여 앞에 보이는 땅이라곤 매끈하게 다듬어진 광야뿐일 때까지, 벌써 말 목덜미도 말머리도 없이.' - 「인디언이 되고 싶은 마음」, 41쪽.

   

   자기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무엇인가가 되고자 한다는 점에서 글쓰기는 공부의 한 과정이며 표현이다. 들뢰즈에 따르면 카프카의 글쓰기-공부는 이런 것이었다. "구멍을 파는 개처럼 글을 쓰는 것, 굴을 파는 쥐처럼 글을 쓰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자기 자신의 저발전의 지점을 찾아내는 것, 자신의 방언을, 자기 자신의 제3세계를, 자신의 사막을 찾아내는 것".「카프카」48쪽 '인디언이 되고 싶은 소망'은 여기서 글을 쓰는 주체인 나를 지우고 개와 쥐의 강밀도로 오로지 글을 쓰는 행위 자체만 남긴다. 이를 위해서 자신의 가장 약한 고리부터 파헤치는 고통도 불사한다. 그 과정에서 문체와 스타일은 방언 혹은 제3세계로서 발견될 것이다. 카프카와 벤야민은 이러한 실험을 자신들 운명의 지표로 삼았다.

* 지금, 작업 중에 드는 생각 : 지금 내가 한동안 정체되어 있는 기분이 드는 건, 자아가 너무 강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주변으로 흩어지기, 내가 아닌 다른 것이 되기, 그렇게 끊임없이 쓰기. 그렇게 끊임없이 쓰자.


210p

   그는 그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문헌들을 대했고 수집했으며 정리하는 일을 즐겼고, 언제나 그 자신의 방법으로 기존의 학문적 체계나 방법론에 대항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일체의 권위와 지식 권력에 맞서 "모든 사물(혹은 인물) 속에 들어 있는 어떤 최고의 생"을「아케이드 프로젝트 I」, N 1a, 4 발견하는 것을 공부의 목표로 삼았다.

   벤야민이 말하는 '어떤 최고의 생'은 각각의 사물, 인물, 시대와 풍경이 갖고 있는 고유한 가치(혹은 특이성) 속에 숨어 있다. 그는 특정한 기준에 따라 위계적으로 위치지어진 그것들을 서사의 맥락에서 떼어내 새로운 공간 위에 재배치함으로써, 연구자의 입장과 익숙한 논리의 체계에서 벗어나 사물과 인물, 시대와 풍경이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212p

   벤야민은  수집가였다.  그는 전형적이거나 분류 가능한 것에 반대하는 방식으로 재료들을 다루었는데, 그것은 흡사 수집가가 자신의 아이템을 소유하고 대할 때의 태도와 같았다. 그는 수집에서 중요한 점은 그 사물이 갖고 있는 본래의 기능, 즉 유용성에서 벗어나 새롭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자료들을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관점과 태도로 대하며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역사의 체계 속에 배치"「아케이드 프로젝트 I」, H 1a, 2 하는 것을 의미했다.

    본래의 맥락에서 떼어내 새로운 장소에 배치함으로써 그것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고, 다른 사물들(혹은 텍스트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실험하는 데 의의가 있었다.


219p

   자료가 될 만한 텍스트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벤야민의 태도는 자신이 쓴 글을 취급하는 태도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그는 한 편의 글을 독립적이고 완결된 것으로만 취급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자신이 쓴 텍스트를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는 건축물과 같은 것으로 이해했다. 필요에 따라서는 새로 쓰는 글 속에 이전에 썼던 글의 일부를 잘라내서 다시 붙이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따. 현재적 관점에서 본다면 자기 표절의 혐의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를 이런 방식을 "워드프로세서의 '복사하기와 붙이기' 기능이 만들어지기 한참 전에" 스스로 개발해냈던 것이다. 수집품의 일부를 필요에 따라 원래 보관했던 상자에서 다른 상자로 이동시키듯, 그는 텍스트를 구성하는 단어와 문장 그리고 개별 단락들을 어느 한곳에 고정하지 않고 그것들이 어울릴 수 있는 글에 잘라다 붙이면서 그 각각이 고유하고 동등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취급하며 활용했다. 그에 더해 완결된 전체를 구성하는 일부로서 그것들을 취급하는 것이 아닌, 취급하는 이의 관점과 위치에 따라 매번 다른 모습으로 발현되는 요소들의 결합으로 이해했다. 그리하여 마치 레고 블록들처럼 각기 독특한 색깔을 지닌 그것들은 벤야민에 의해서 언제 어디서나 절단되고 채취되어 새로운 텍스트 위에 재배치되었다. 각각의 요소들과 그것들의 근거가 되는 지식에는 어떤 위계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본인이 쓴 글을 포함해서 어떤 텍스트와 마주했을 때 벤야민이 그것을 다루는 방법은 아카이브화 하고, 수집하고, 구성(배치)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가 보여준 독특한 시각은 자료들을 발췌, 번역, 몽타주화, 재배치하는 데서 다시 확인된다. 그는 이런 태도를 통해 기존의 연구 방법과 거리를 두는 한편, 쓸모없는 것들 혹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어왔던 역사의 자료와 인물들과 사건들에 색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228p

   '베껴 쓴 텍스트만이 텍스트에 몰두하는 사람의 영혼에 지시를 내린다. 이에 반해 텍스트를 읽기만 하는 사람은 텍스트가 원시림을 지나는 길처럼 그 내부에서 펼쳐 보이는 새로운 풍경들을 알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냥 텍스트를 읽는 사람은 몽상의 자유로운 공기 속에서 자아의 움직임을 따라갈 뿐이지만, 텍스트를 베껴 쓰는 사람은 텍스트의 풍경들이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 「일방통행로」, 77쪽

   텍스트를 베껴 쓰는 일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그 길의 영향력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멀리서는 보이지 않는 길 위의 사소한 풍경이 보이고, 어떤 냄새나 소리, 분위기까지 섬세하게 경험할 수 있다. 반면, 문장을 단지 읽기만 하는 것은 마치 비행기를 타고 가는 사람이 높은 곳에서 지형과 도로의 상태를 조망하는 것에 비견할 만하다. 넓게 조망할 수는 있어도 구체적으로 느낄 수는 없고, 사소한 풍경을 발견할 기회도 놓친다.


231p

   그런데 왜 몽타주일까? 아무런 인과적 관련도 없는 다양한 존재들로부터 떼어낸 파편들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몽타주는 "극히 작은, 극히 정밀하고 잘라서 조립할 수 있는 건축 부품들로 큰 건물을 세우는 것"「아케이드 프로젝트 I」, N 2, 6 과 같기 때문에 "실로 자그마한 개별적 계기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전체 사건의 결정체를 찾아내는" 데 효과적이다. 이러한 몽타주 방법을 통해 벤야민은 역사유물론이라는 마르크스주의적 방법이 희생해온 '시각성'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변증법적 이미지'라고 불렀다. "번증법적 이미지만이 진정한 (즉 태곳적 이미지가 아니다) 이미지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이미지들을 만나는 장소, 그것이 '언어'이다."「아케이드 프로젝ㅌ I」, N 2a, 3 왜냐하면 그가 베껴 쓰거나 쓴 것들, 즉 문자를 통해 이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른바 '문학적 몽타주' 방식으로 조립된 과거의 문장들은 벤야민의 손끝을 떠나 다시 하나의 종이 위에서 새롭게 펼쳐진다. 과거의 문장들은 지금 그것을 읽는 사람들의 시선 위에서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벤야민은 그것을 "과거에 있었던 것이 지금과 섬광처럼 한순간에 만나 하나의 성좌를 만드는 것"「아케이드 프로젝트 I」, N 2a, 3 이라고 표현했다. 그때, 과거와 현재는 시간적 연속성을 갖는 연대기적인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건들과 이야기가 현재의 맥락 위에서 시작화됨으로써 그것을 보는 지금 사람들에게 어떤 인식의 비약과 각성의 순간을 도모하게 하는 것에 가깝다.


237p

   벤야민에게 글쓰기는 존재의 증명이자 직업이었고 오락이자 무기였다.  무엇보다 '문자'의 영역을 뛰어넘어 거 의미를 극단적으로 확장시켰다. 그가 무엇인가를 '읽는다'고 했을 때, 그것은 독서의 영역을 넘어서 이미지, 연극, 영상, 그래픽과 같이 문학의 상위 범주에 있는 예술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된 것이었고, 때로는 사물뿐만 아니라 길, 지도, 풍경 등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세계 그 자체를 '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글쓰기 역시 벤야민 자신이 생각한 것을 문자로 고정시키는 행위 이상을 뜻했다. 그에게 글쓰기는 수집하기, 정리하기, 베껴 쓰기, 인용하기, 복사하기, 잘라내기 등의 활동 및 다른 언어로 쓰인 누군가의 글을 번역하는 작업을 포함했고, 글쓰기의 도구(이를테면 그는 특정한 종이와 잉크 만년필을 고집했다)뿐 아니라 글을 쓰는 장소와 분위기를 까다롭게 고르고,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글 쓰는 자의 신체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궁극적으로 글쓰기의 과정 속에서 새로운 문체와 형식을 계발하는 것까지를 모두 포함했다.


256p serendipity 우연히 발견하는 능력, 에 대해.

   세렌디피티는 벤야민이 자주 사용한 방식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무엇'을 말하기 위해 그것에 대해서만 공부하지 않았다. 사건과 인물, 장소와 이론이 갖는 직접적이고 명백한 관련성을 증명하는 일보다는, 오히려 표면적으로는 무관한 '파편'들을 하나의 시공간 위에 배치하는 몽타주 놀이에 흥미를 보였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예기치 않은 효과에 기대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발견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그는 분과 학문의 틀과 글쓰기의 규범을 자주 해체하고 새롭게 조립하는 실험을 매번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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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부하고 사유한다는 것(글을 쓴다는 것)은 도시를 하나 건설하고 그곳을 서성이며 내가 만든 거리들에 익숙해지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시간에 어느 가게 문 옆 구석에서 10분간 몸을 데울 수 있는지, 일주일에 한 번씩 언제 어디에서 딱딱한 빵 한 조각을 얻을 수 있는지, 쌓아 놓은 수도관들 중 어느 곳에 잠잘 만한 자리가 비어 있는지를 알"게 되는 일이다.

   내 사상의 도시. 기억(사유)의 골목들에 대하여.

   사상은 "목차"가 아니라 "지도"여야 한다.

Posted by 습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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