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p

문예비평가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에서 소설을 문제적 주인공의 '여행'으로 표현하고 "여행이 끝나자 길이 시작된다."는 말로서 근대사회의 소설을 가치관의 중심점이 사라진 사회상을 진단하는 중요한 지표로 간주했다. 현대의 영향력 있는 소설가 중 한 사람인 쿤데라는 소설을 "작가가 실험적 자아(인물)을 통해 실존의 중대한 끝까지 탐사하는 위대한 산문의 형식"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제2장 플롯

1. 플롯의 개념


84p

간단히 말해서 이야기, 즉 스토리가 사건의 시간적 서술이라면, 플롯은 사건의 인과적 서술이다. 플롯은 소설의 주된 재료를 결합하여 작가의 사상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

스토리를 더욱 흥미롭게 이끌어가기 위해서 작가는 몇 개의 사건을 감추거나 전달을 지연시킨다. 혹은 사건의 시간 순서를 역전시켜서 전달하기도 한다. 이때 독자는 그 스토리가 하나의 작품으로 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의심스럽지만 점차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면서 갈등이 해소되고 숨겨졌던 의미가 밝혀지며 마지막에 가서 독자는 스토리의 모든 부분을 이해한다. 소설의 서두에서는 '가능성'이었던 것이 결말에 이르러서는 '필연성'이 되는 것이다.


1) 선택과 배열의 논리


85p

플롯이란 "걸정적인 감각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도록 사건을 한정하고 연속화하는 법칙의 집합"이다. '사건을 한정한다'는 것은 많은 사건 중에서 어떤 사건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사건을 연속화한다'는 것은 곧 그 사건을 배열한다는 말이다. 이렇듯 플롯은 이야기를 선택하고 배열하는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건을 단순히 발생 순서에 따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서 새로운 순서로 재배열하는 것이다. 독자에게 '결정적인 감각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도록 한다'는 것은 곧 그 소설의 창작 의도에 맞추어 사건을 배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플롯이란 작가의 의도와 목표가 효과적으로 달성되기 위한 배열의 원리이다. 분리되어 있는 에피소드들을 논리적이며 심미적인 조직체로 전달하여 기대됨직한 독자들의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한 의도이며 목표이다. 사건의 분편들을 논리적이며 심미적인 조직체로 독자에게 인지시키기 위해서 작가는 사건을 인과성의 고리로 긴밀하게 연결하여 사건들이 유기적이며 통일적인 하나의 완결된 구조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87p

작가가 창작과정에서 사실들을 선택할 때 우선 고려해야 하는 점은 그 사실이 주제의 전달에 유용한가의 여부이다. 그 사실이 주제 전달에 유용하려면 독자의 상상력을 휘저을 수 있을 만큼 생생한 사실이든지 줄거리가 전개되어 나가는 과정을 알려 주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든지 해야 한다. 독자는 작가가 선택한 사실을 통해서만 작품 분석의 열쇠를 얻게 된다. 독자는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서야 왜 작가가 그런 사실을 선택했는가, 왜 나머지 사실들은 버렸는가, 만일 앞에서 다른 사실을 선택해서 썼다면 얼마나 다른 소설이 되었겠는가를 이해한다.


2) 인과관계의 서술


87p

포스터는 <소설의 이해>에서 '플롯은 인과관계를 강조하는 서술'이라는 말과 함께, 무엇이 단순한 스토리이고 무엇이 잘 짜여진 플롯인지를 다음의 예문을 들어 설명하였다.

['왕이 죽고, 왕비도 죽었다.' 이것은 이야기이다. '왕이 죽자 슬픔을 못 이겨 왕비도 죽었다.' 이것은 플롯이다. 시간의 연속은 보존되고 있지만 인과감이 거기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또, '왕비가 죽었다. 사인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니 왕이 죽은 슬픔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은 신비를 안고 있는 플롯이며 고도의 발전이 가능한 형식이다. 이것은 시간의 연속을 유보하고 가능한 데까지 이야기를 떠나 멀리 이동한다. 왕비의 죽음을 생각해 보라. 이것이 이야기에 나오면 '그러고 나서는?' 하고 의문을 갖는다. 이것인 플롯에 나오면 '이유는? 하고 이유를 캔다. 이것이 소설이 갖는 두 가지 형상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2, 플롯의 단계

90p~

플롯의 단계 중 행위가 시작되는 첫 번째 단계는 '발단'이라고 한다. 발단의 단계에서는 앞으로 작품이 전개되어 나갈 바탕으로서의 가정들이 제시된다. 이 단계에서 등장인물이 소개되고 배경이 확정되며 사건의 실마리가 나타난다. 작가는 발단의 단계에서 독자에게 작품의 분위기와 인물의 기본적인 성격, 서술자의 어조 등을 제시해야 한다. 동시에 발단에서 작가는 무엇인가 숨겨지고 혼란스러운 듯한 불안의 요소를 보여 줌으로써 이후에 사건이 갈등과 분규로 나아가는 기반을 만든다.

... 다음 단계는 '전개'이다. 이 단계에 이르러서는 사건 해결에 장애가 되는 어려움들이 많아지고 갈등으로 말미암아 긴장이 조성된다. ... 전개 단계에서는 주제의 강조, 등장인물의 심리와 성격의 구축, 이후에 경이로운 결말로 독자의 반응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 동일한 사건이나 표현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일정한 사건이나 행동, 모티프, 심리적 독백 등과 같은 소설적 요소들이 한 작품의 내부에서 연속되고나 반복될 때, 그리고 그 반복이 '의미 있는 반복'일 때 그 반복되는 요소나 기교를 가리켜 패턴이라고 한다. ... 이 전개의 단계에서는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과의 내적 연관성을 강조하기 위해 복선을 깔기도 한다. 복선은 사건을 전개할 때 사건과 사건의 필연성, 가능성을 주기 위해 앞으로 다가올 상황에 대한 암시를 주는 서사적 장치이다. ... 복선을 통해 독자는 사건에 대해 좀 더 흥미를 갖게 되고 앞으로 발생할 사건에 대한 심리적 준비를 하게 된다.

다음 단계는 절정이다. 여러 가지 갈등이 얽혀 복잡한 상황은 결국 어떤 사건이 돌발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거나 또는 긴장을 품고 있던 정적인 상태가 깨어져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으로 발전해 나아간다. 바로 이 순간이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때이며 이후로 사건은 갈등이 해결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간다.

... 마지막 단계는 '결말catastrophe'(!) 혹은 '대단원'이라고 한다. 결말에 이르면 갈등의 결과가 드러나고 문제는 해결되며 새로운 안정상태를 위한 기초가 주어진다.


3. 플롯의 법칙


94p~

소설에서 플롯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법칙은 '그럴듯함'이다. 플롯이 잘 구성된 소설은 스토리가 개연성 있는 사실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소설의 내용은 독자들에게 그럴듯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두 번째 법칙은 '놀라움'이다. ...

... 세 번째 법칙은 '긴장suspense'이다. 작가는 소설을 읽는 독자를 긴장하게 함으로써 이야기의 결과에 대해 지속적으로 궁금증을 갖게 할 수 있다. 긴장이란 가능성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인식을 포함하며, 그 가능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 긴장이 일어나도록 유인하는 수단은 미리 암시를 주는 것이다. 즉, 찾고 있는 인물의 출현을 암시하는 세부적인 정황을 미리 드러내 보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그 인물이 거기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고 곧이어 그 기대감을 만족시켜 주면 된다.

... 네 번째 법칙은 '통일성'이다. 구성은 분명히 통일성을 가져야만 한다. 진정한 처음, 중간, 끝을 가진 구성 그리고 그럴듯함, 놀라움, 긴장의 법칙을 다루는 구성은 통일성을 필요로 한다.


95p

플롯의 구성은 그 소설의 의미를 표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작가는 플롯을 통해서 그들의 경험이라는 재료를 조직한다. 어떤 경험을 이해하는 작가 고유의 방법, 즉 그 경험이 작가에게서 갖는 의미를 독자에게 제시하는 것도 플롯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작가가 제시하는 경험의 의미를 독자가 느끼게 하고, 독자로 하여금 무엇이 원인인지 그 인과관계를 분명히 밝혀 주는 것이 바로 플롯의 구실이다.

Posted by 습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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