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은 포기되어야만 하나.
삶은 객관적이지 않다. 객관적이지 않은 세상에서 수많은 주관들이 손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주관은 어떤 모습이어야 타자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노골적으로' 서정에 천착한다면 어떨까. 나를 깊게 파내려가다 보면 내가 아닌 것이 나오지 않을까. 타자가 비아인 것만은 아닐테지만, 내 안에 있는 비아가 타자의 실마리 정도는 될 수 있지 않나.
우리는 세계의 뒷면에서 연결되고 있다는 생각. 저마다 자기가 아닌 것들을 품고. 그래서 자기를 갈구하다 보면 큰 구멍을 마주하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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