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남편」

2017. 4. 8. 16:27

나는 범인의 아내가 아니다


“도미노가 다 넘어지면 끝내주는 그림이 완성될지도 모르지만, 그 그림이 우리와 무슨 상관 있을까. 도미노는 내려다봐야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알 수 있지 않나. ... 내가 완성해나가는 이 그림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저 위에 편히 앉아 그것을 보는 이는 누구인가.”(최진영, 2010, 109p)

한 사람에게 ‘진실’은 ‘사실’을 편집하여 재구성한 결과다. ‘사실’이 실제로 그를 지나간 사건들이라면, 사람은 사실들을 편집해 기억한다. 그리고 진실을 판단하는 기준은 기억이며, 진실은 기억에 의존한다고 말해야 한다. 세상에는 ‘나의 진실’이라는 게 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편집하는가. 그래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진짜에 가까운 사람이 내 남편이라는 확신, 그것 하나로 모든 가난과 피로와 불행을 견뎌왔다.”(124~5p)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수단으로서의 진실을 만든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의 진실을 자기 삶 ‘위’에서 내려다볼 수 없다.

소설의 구조는 선명하다. 처음에는 남편이 결백하다는 게 그녀의 진실이었다. 그녀의 기억에 남편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어째서 더러운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버렸을까.”(115p) 그녀에게 그는 “늘 안쓰럽고 애달픈 사람”(112p)이었다. 그녀는 그를 변호한다. “다은이가 너무 예쁘니까 자꾸 봤을 테고 혼자 사는 미스 박이 걱정되어 그녀를 보살폈을 것이다.”(115p) 그러나 문장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그녀의 편집이다. 그녀의 진실은 다음 문장을 위한 것이다. ‘내 남편은 범인이 아니다.’ 이런저런 기억들 때문에 남편이 결백한 게 아니라 반대로, 남편이 결백하므로 그녀는 그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기억한다. 남편은 범인이 아니므로 당연히 면회를 갈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편집은 ‘그가 그녀의 남편’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랑은 안 해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그런 사람이랑은 안 해요. 나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우린 그런 사이 아니에요.”(113p)

그러나, “당연히 아줌마도 미안해해야지. 뻔뻔하긴. 그 서방에 그 마누라야, 아주.”(118p) 라고 경찰이 말한 이후 그녀는 살아나가기 위하여 다른 것을 필요로 한다. 이제 그녀의 진실은 이것이다. ‘나는 범인의 아내가 아니다.’ “단단히 잘못됐어. 이런 식으로 내 인생이 꼬일 리 없지. 나는 절대 파렴치범의 아내가 아니야.”(125p) 남편이 범인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남편이 범인이든 아니든 사람들은 그녀까지 범죄자 취급했고(마트에서 쫓겨난 일, 현관 앞에서 옆집 사람에게 당한 일 등) 그녀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문장의 주어가 바뀐 것이다. 처음에 이 사건은 남편의 일이었기 때문에 ‘나’의 일이었지만, 이제는 남편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그녀의 일이다. ‘내 남편’이 범인이 아닌 것과 ‘나는’ 범인의 아내가 아닌 것, 둘은 같은 문장이지만 전혀 다른 문제다. “내가 믿는 것은 그의 무엇일까. ... 나는 그라는 인간이 아니라 내 남편인 그를 믿는다.”(121p) 그를 믿는 것과 남편인 그를 믿는 것 사이의 차이처럼.

결말에서는 비틀어질대로 비틀어진 ‘나’의 감정이 폭발한다. 그러나 갑작스럽지는 않다. “무자비해지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 그런 가식으론 그 누구도 위로할 수 없었다. 우린 서로를 물어뜯어야 했다.”(119p) “당신, 이렇게 날 망칠 순 없어. 당신을 믿는다고 말해줘야지. 당신은 내 남편이니까. ... 안쓰럽고 애달픈 당신. 당신은 죽을 때까지 그런 사람이어야 해.”(125p) 이제 진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편이 범인이든 아니든 ‘나’는 범인의 아내가 아니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남편은 이미 흉악범이다. “그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몇 번이나 지갑 속 사진을 꺼내봤다. 머릿속엔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흉악범의 얼굴만 둥둥 떠다녔다.”(126p)

“당신을 어떻게 믿어. 당신이 뭔데. 당신은 날 믿어?”(128p) 소설 말미의 이 문장은 그래서 힘이 세다. 당신이 믿을만한 사람이냐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당신은 무엇이냐는 근원적인 질문이다. 소설을 읽으며 ‘나’는 (독자 또한) 진실이 한없이 나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살아나가기 위해 좋을대로 믿는 것이 진실이며, 필요없어지면 내팽개칠 수도 있는 게 진실이다. 그래서 남편과 친구가 한 말은 묘하게 대비된다. ‘날 믿어’와 ‘다 잊어’.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이며, 무엇을 잊어야 할 것인가. 확실한 건, 이 사건도 결국 편집된다는 것이다.

 

“” 안의 문장은 모두 인용 ;

  최진영 (2010). 남편. 실천문학, 108-128. 

Posted by 습작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