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분명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내버려둘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곱씹고 곱씹다 보면 결국 어쩔 수 없는 채로 내버려둬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복기를 멈출 수 없는 일들도 있다. 그럴 때면 우리는 골방 안으로 들어간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벽 하나를 두고 마주앉는다. 다시 한 번 패배한다고 해도, 그 방에서 나오면 우리는 조금은 다른 표정을 짓는 사람이 된다.

소설 웃는 남자는 그런 투쟁에 대한 이야기다. 골방 안에서 어쩔 수 없었던 순간들이 재생한다. ‘나’는 오랫동안 생각한다. 이건 절대로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곱씹고 곱씹어야 한다. 그러나 단순한 것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를 변호하는 방어기제를 버려야 한다. 그의 아버지처럼 잘못한 거라는 말에 화내서는 안된다. 벽지를 뜯어낸 벽을 보아야 한다.

‘다 벗겨내고 보니 벽은 내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흉했다. ... 이 벽을 보기 전에 나는 이런 벽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 누구나 벽 곁에 머물지만, ... 벽의 실상이 이렇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까.’ 벽은 타인과 나를 안전하게 구분짓는다. 벽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 일이 아니라고 쉽게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단순해져야 하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벽이다. 벽지를 뜯어내면 흉한 모습이 드러난다. 우리는 잘못으로부터 우리를 방어하고 있다.

‘내 잘못이 무엇인가. ... 나는 어쩌면 총체적으로, 잘못된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잘못이라는 단어를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어디까지가 내 잘못이고 어디서부터 내 잘못이 아닌 걸까. 아무것도 어쩔 수 없다면, 나는 총체적으로 잘못된 존재인가. 연인이 죽는 순간에도, 원래부터가 내 가방을 움켜쥘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판단이고 뭐고 없이 그렇게 하는 인간이 있고 그렇게 하지 않는 인간이 있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 ‘말하자면 패턴 같은 것이겠지. ... 결정적으로 그, 라는 인간이 되는 것. 땋던 방식대로 땋기. 늘 하던 가락대로 땋는 것. ... 나도 모르게 직조해내는 패턴의 연속, 연속, 연속.’

그러나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어쩔 수 없다고 해서 패배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작가는 답을 내리지 않고 다만 고뇌하는 한 사람을 보여준다. ‘디디’는 죽었지만, 그 때를 복기하는 ‘나’가 아직 싸우고 있다. 나는 이것을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다. 함부로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복잡한 방어기제를 버리고 단순한 것이 되어야 한다. 무력감에 빠지지 않으려 발버둥쳐야 한다. 스스로 방 안으로 기어들어가고 스스로 방을 나와야 한다. 계속해서 질문하고 타인에 관한 한계를 스스로 규정해내는 일이다. 내 잘못이 무엇인가. 나는 어떤 인간인가. 그게 반복될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된다.


기울임체 ; 황정은, 「웃는 남자」, 『아무도 아닌』, 문학동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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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습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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