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31페이지.

     이제는 알겠다. 사랑은 여분의 것이다. 인생이 모두 끝나고 난 뒤에도 남아 있는 찌꺼기와 같은 것이다. 자신이 사는 현실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데츠트보』라든가, 니콜라예프스크 같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단어들 속에서, 열병에 걸린 듯 현기증을 느끼며 사랑한다. 한 번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맛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했던 것들이, 우리를 환상 속으로 이끄는 그 모든 낯선 감각의 경험들이 사랑의 거의 전부다.


37페이지.

     “그게 진짜 자네가 바라는 것이라면 이 세상 전부가 자네를 도와줄 거야.”

     “어떻게? 이 세상 전부가 나를 도와줄 수 있다면, 과연 어떻게?”

     내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갈래머리 소녀 시절부터 악마처럼 강해지고 싶다고 읊조렸던 여자였으며, 창문을 활짝 열어 내 작은 방으로 뜨거운 태양을 끌어들인 여자였다. 그런 여자 앞에서 나는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니시무라는 내게 주위를 둘러보라고 말했다. 그는 술집의 테이블과 취한 손님들과 창문들과 우리 앞에 놓인 술잔과 안주의 숫자를 헤아렸다. 일곱. 열하나. 스물넷. 둘. 넷. 그리고 나를 가리켰다.

     “너는 하나. 불우했던 천재 소년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에게 일어난 일일세. 친구가 차아와 허름한 가방을 열고는 나라에서 금지한 책들을 꺼내지. 한참 동안 가방을 뒤적인 친구는 한 장의 사진을 찾아 들더니 그에게 주고 나서 창가에 기대 휘파람을 불었어. 그 일을 시로 남긴 이시카와는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썼어. ‘그건 아리땁다고만은 할 수 없는 젊은 여자의 사진이었다.’ 몇 권의 금서 사이에 들어 있는 한 장의 사진이었으니까. 하나라는 게 중요하지. 우리가 원하는 건 오직 하나뿐이니까. 그게 하나뿐이라면, 세상은 자네를 도와줄 수 있는 거야.”


   ...


     나의 소망 역시 크고도, 또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더 많은 것이었지만, 어쨌든 니시무라의 이야기는 내게 어떤 희망의 전언처럼 들렸다. 오직 하나만을 원하는 순간, 우리는 세상 전부의 도움으로 그 하나를 얻을 수밖에 없다는, 다소 황당하고도 무책임한 전언. 그러므로 희망의 전언이랄 수밖에 없는 이야기.





Posted by 습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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